자살하지 말아요. 자살은 죄악입니다.

2008. 10. 7. 08:23교회,신앙생활

<자살, 그러지 마세요.>

 

좋아하던 여자가 죽었다.
아니 여자들 몇이 죽었다.
남자도 죽었다.
아까운 인재들이 스스로 죽었다.

 

남겨진 사람들은 슬퍼서 울고,
소식을 듣는 이마다 안타까워서
그 인물이 아까워서 함께 슬퍼한다.

 

대한민국 국민치고 최아무개 하면 모르는 사람 없을 만큼 유명한 사람이 죽고 나서
국회에서는 무슨 법까지 만든다고 한다.  만들어야한다.
그래서 죽을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죽지 않게 할 수 있다면야 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한 사람이라도 아까운데 너무 많이 죽으니 큰일이다.
죽은 사람들 모두 이 사회가 이 나라가 인정하는 인재들 아닌가?

 

모두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겠지만 죽음이란 한 번 가고나면 다시 못 오는 이별 인데
보내고 나면 못 잊어 흐느끼며 우는 이들이 많은데

왜 못 올 길을 가는가?

죽으면 안된다.

죽지 않고 살아야 볕들 날도 있고 짓밟힌 명예도 회복이 되고 억울한 누명도 벗게 된다.

억울해서 도저히 못 살겠다고?
세상이 섭섭하다고?
세상에 하나님이 있으면 이러느냐고?
그래서 속이 상해 화풀이로 죽는 거라고?

 

성서의 욥기를 읽어보라.
욥이란 사람은 굉장한 부자로 살았더란다.
순전하고 착하기로 하나님도 알아주는 사람이었더란다.
일곱 아들, 세 딸을 곱게 잘 길러서 행복하게 살던 이 사람이
하루아침에 자식들도, 재산도 다 잃는 재앙을 만났더란다.

 

실신하고 자살해야 그 다음 스토리가 맞는 건데
성서에는 이 욥이란 사람이 그러지 않았다고 전한다.
고작 자기 옷을 찢였으며 삭발을 하였을 뿐이란다.
삭발을 하고 어디로 들어갔나?  아니다.
땅에 엎드려 경배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내가 모태에서 적신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했단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몸에 종창이 나서 기왓장 조각으로 헌데를 긁고 앉아 있는 꼴을 본
마누라가 화가 나서
“당신이 그래도 하나님만 입에 달고 있소? 차라리 죽지...” 했단다.
듣고 있던 욥이
“ 당신, 그 무슨 말이오? .어리석게 함부로.... 하나님께 복을 받고 살아봤으니 재앙도 받아
봐야지...“ 대꾸했다고 한다. 

 

그렇게 쫄딱 망해서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세 친구가 욥을 찾아 왔다고 한다.
아, 이 친구들이 욥을 붙들고 울며 불며 네 몰골이 이게 뭐냐며 몇 날 며칠을 함께 있으며

위로하더니 차츰 욥을 향해 말하는 투가 네죄가 많아서 그런다. 회개해라. 네가 속으로 죄 짓고 있었제?  등등 이상한 말로 욥을 건들였다고 한다.
참, 욥으로서는 섭섭하고 , 억울하고 분했지만 그냥 참고 살았단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욥은 다시 자식을 낳으며 살았는데 일곱 아들과 세 딸을 낳았으며
재산도 회복이 되어 전 보다 더 많은 재물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성서는 욥이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로 이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성서를 읽는 후세 사람들은 욥을 보고 인내를 배운다.
성서는 우리에게 <기한이 차서 죽는 것>이 복임을 가르친다.

인간은 최악의 환경, 그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그 어려움을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성서는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고 최진실, 안재환 등 앞서 간 인재들이 욥과 같은 인내심으로 어려움을 좀 더 참고 우리 곁에

살아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혹, 지금 어려운 일로, 힘든 일로 고민하며 죽고 싶은 사람 있나요? 참고 사는 것이 좋은 길입니다. 
어려운 시험일수록 통과하면 더 높은 자리에 승진하듯이 지금의 어려움을 잘 참고 사시면 더 큰 축복을 받으실겁니다. 참고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