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싸움은 지켜봐야 하지만.....

2020. 9. 16. 22:56카테고리 없음

소싸움은 지켜봐야 하지만.

며칠 전부터 보육교사 교육원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데 박식하신 교수님들이 어찌나 재미있게 강의를 하시는지 눈가에 주름을 더하게 생겼다. 오늘은 강의 중에 연료 하신 교수님이 재미있는 질문을 하셨다.
"내가 팔공산 갓바위 주차장에서 주차 문제로 시비가 붙어서 온갖 육두문자를 다 동원하여 싸우고 있는데 여러분들이 우연히 그런 나를 발견했다고 치자, 다음 중 여러분이 취할 행동 중 가장 올바른 것은 어떤 것인가?"
교수님은 칠판에 아래와 같이 쓰셨다.
1-구경한다,
2-응원한다
3-인사를 한다.
4-모른 체한다
5-달아난다.
교수님은 우리를 둘러보며 답을 맞힌 사람은 강의를 그만 듣고 집으로 가도 좋다고 하셨다. 아무도 답을 못 맞힐 것이라고 짐작을 하시는 눈치다.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소리쳤다.
"2번 요."
교수님은 미소를 지으며 2번 옆에 그 학생의 이름을 적으셨다.
이어서 3번 요, 4번 요, 1번 요, 하는 소리들이 쏟아지고 점점 흥미가 더해지는데 어떤 이가
"교수님, 6번을 하나 더 만들어주세요. 전 말리겠어요." 해서
6번-말린다.
라고 쓰시는데 또 한 사람이 "전 같이 싸우겠어요." 해서
7번-같이 싸운다, 까지 쓰였다.

교수님은 번호 옆에 그 번호를 부른 학생들의 이름을 빠짐없이 적으셨는데 5번 옆엔 그 누구의 이름도 적히지 않았다.

교수님이 싸우시는데 제자 된 도리로 어찌 달아날 수 있으랴 하는 기특한 생각들인 게 분명했다.
점잖을 빼느라 입을 다물고 있는 학생들도, 칠판에 이름을 적힌 학생들도 모두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칠판을 주시하고 있었다.
근엄한 교수님이 하신 약속이니 답을 맞힌 사람은 냉큼 가방 들고 집으로 가도 되리라.
교수님은 칠판과 우리를 번갈아 흩어 보신 후 1(일) 번 번호를 탁 치시며 말씀을 하셨다.
"일 번이 제일 양통 머리 없어!"
그리고 2번도 틀렸고, 3번도 틀렸고, 답은 5번이라고 하셨다.

나는 싱긋이 웃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가 분명하다. 일요일이라 교회에 다녀오는데 길가에 사람들이 약장수 구경하듯 원을 만들고 모여 있어 들여다보니 담임선생님이 웬 청년과 멱살을 잡고 싸우고 계셨다.

불혹을 넘긴 선생님의 얼굴엔 땀이 흥건했고 짙푸른 남방엔 흙이 잔뜩 묻어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보는 중에도 여러 번 청년과 엉겨 바닥을 뒹구셨다.

점잖디 점잖은 선생님이 그렇게 쌍스럽게 싸울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때까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랬으니 얼마나 신기하고 희한했겠는가.

재미도 있었다. 원래 불구경 다음으로 재미있는 게 싸움구경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열심히 구경하던 중에 그만 선생님과 눈이 딱 마주쳤다. 아마도 내 눈은, 힘내서 꼭 이기세요 선생님, 하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나는 미리부터 선생님 편이었으니까. 그런데 내 눈동자에 꽂히는 선생님의 표정이 더 할 수 없이 차가웠다. 공부시간에 장난을 쳐도 그렇게 차가운 시선은 받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도망치고 말았다.
다음날 등굣길의 복도에서 만난 선생님은 내 인사를 받아주시지 않고 고개를 돌리셨다.

나는 그때까지 왜 내가 그런 시선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 후로도 나는 선생님의 시선 밖에 있었고 간혹 불쾌한 눈빛을 받기도 했다.

"누가 자신의 치부를 보이고 싶겠나? 그것도 제자에게. 소싸움은 지켜봐야 해, 소는 열심히 싸워서 이기더라도 주인이 어딜 가고 없으면 찾아가서 뿔로 받아버린다는 소리가 있거든. 하지만 내가 싸우는 걸 보거든 얼른 달아나 버려라."
교수님의 말씀이다. 나는 장차 보육교사들이 될, 나까지 포함해서 82명의 이 학생들이 부디 아이들에게 치부를 보이는 일이 없게 해 달라고 잠시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내 여동생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