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과 망우공원을 다녀와서

2020. 11. 23. 12:00카테고리 없음


 
오전 예배를 마치고 오후 예배까지는 조금 시간이 있어서 그동안 미루어왔던 K형과의 시간을 위해 K형에게 전화했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한 K형이 전화를 받았다.

"형, 집에 있지요? 나하고 잠깐 바람 쐬러 갑시다"

나보다 두 살 많은 K형은 혼자 살며 지병으로 몸이 불편해서 바깥출입이 어려운 상태다.

허리가 조금 구부정한 모습으로 지팡이를 짚고 길가에 서 있던 K형을 옆에 태우고 망우공원 쪽으로 갔더니 이미 단풍이 한창이다.

인터불고 호텔 앞을 지나서 고모령 길로 꺾어 천천히 달리니 약간의 보슬비가 내렸다.

단풍 구경을 못 하고 집에만 지냈을 K형과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K형의 옆 얼굴을 힐끗힐끗 보니 이제는 영락없는 노인이다.

우린 한 바퀴 돌고서 망우공원 쪽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비는 그쳤지만, 공원에는 사람이 없었다.

가을 색으로 갈아입은 나무마다 울긋불긋 저마다 치장을 하여 곱다.

소복하게 쌓인 낙엽을 보고, 팔랑거리며 벤치에 떨어지는 잎을 보니 가을 속에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나무들이 잎을 떨어뜨리며 겨울 채비를 할 이맘때면 마음이 바빠진다.

K형이 영남제일관 계단 오르기가 불편할까 봐 우측으로 둘러 오르면서 K형 뒤를 천천히 걸었다.

사람이 늙으면 걸음걸이부터 표가 난다.

지팡이를 짚고 걷던 K형은 조금 걷더니 서서 쉬었다.

나도 저렇게 되겠지....

쇠약해진 K형은 실제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인다.

나도 몇 년 있으면 저렇게 되려나.

"형,, 그냥 돌아갈까요?" 물었더니

" 응, 괜찮아~ 조금만 쉬었다 가세"

맹수의 왕이라는 사자도 늙으면 위풍당당하던 모습이 사라져 초라해지고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가 마침내 외로이 혼자 죽어간다.

사람이 맹수와 다른 것은 늙으면 자식들이 보살펴 주는 점인데 K형에게는 가까이서 보살펴줄 자식이 없다.

아들 하나가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들은 적이 있지만,

스스로 밝히지 않는 개인사라 더 물을 수가 없었다.

저 몸으로 혼자 어떻게 살지--- 생각하면 측은하기만 하다.

늦게 예수를 믿고 있는 K형에게 예수그리스도는 지금 유일한 소망이요 기쁨이 되고 있다.

K형이 언젠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교회에 출석하게 된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고 주일날이 기다려진다고....

주일날 교회에서 나를 만나 보는 것도 큰 낙이라고 했다.

수십 년을 안부도 모른 채 서로 떨어져 살다가 어느 날 만난 K형은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가 대*전자가 부도 나는 바람에 실패하고

혼자 대구로 내려왔다고 했다.

K형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생활 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다.

K형이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는 주중이나 교회에서 만나 신앙생활에 관해서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으나 K형이 집사가 된 뒤로는 그러질 못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K형은 나와 통화를 하다가 끊을 때면 "내가 자네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네...."라고 말한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주일날 교회에서도 서서 인사만 할 뿐 이야기 할 시간이 없다.

지나간 남전도회 월례회 모임 때는 일부러 K형 옆자리에 앉았었다.

나이가 나보다 많아 제1남전도회로 올라가야 하지만 나하고 같이 있고 싶어서 몇 해를 올라가지 않다가 올해는 올라가겠다고 해서 제1 남전도회 형제들과 유대관계가 좋아진 것 같아 마음이 놓이긴하나 그나마 교회에서 만나는 시간도 줄어들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K형과 나는 천국에 갈 일만 남았다.

K형의 신앙심이 더 깊어지길 바라면서 조용히 지켜보고 생각날 때

기도로 응원해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 여겨진다.

우리는 영남제일관 뒤편 금호강이 잘 내려다보이는 끄트머리에

서서 금호강을 물끄러미 한참 내려다봤다.

K형과 나에게 금호강과 만촌 유원지는 어릴 때 놀이터였다.

금호강은 옛날처럼 지금도 똑같이 흐르는데 우리는 많이 늙었다.

망우공원내 나무들이 잎을 떨구는 계절을 맞았지만 의젓하게 서있듯이 K형이나 나도 남은 생을

서로 격려하며 믿음과 소망으로 의젓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오늘 K형과의 나들이는 어느 모임에서 보낸 시간보다 값진 두 시간이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2020년 11월에

 

 

 

망우공원 
망우공원 내 영남제일관 앞길
망우공원 
망우공원

 

 

쌓인 낙엽들

 

비 그친 하늘이 흐리다.   
2020. 11. 05 K형과 망우공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