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여름 강릉여행기

2020. 9. 6. 23:18구, 홈페이지 자료


주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7시쯤 아내와 함께 처가가 있는 대전으로 출발했습니다.
3박 4일의 짧은 휴가를 그동안 소원했던 처제들과 손아래 동서들과 함께 강릉에서 보내기로 하고 가는 길에 처가에 들려서 밤 9시쯤 믿음이 외할아버지를 태우고 다시 강릉으로 향했습니다.

비가 오는 영동고속도로에는 서울로 가는 차들은 많았으나 강릉으로 가는 차들은 적었습니다.
아내가 잠시 운전 교대를 하는 사이 눈을 붙였다가 다시 깨어났을 때는 차가 강릉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습니다.
강릉시내와 반대방향인 좌회전을 하고 주문진 방면으로 약 30분쯤 올라가다가 하조대
해수욕장을 조금 지나서 막내동서가 임대하여 별장처럼 사용하며 외부에서 오는 손님들을 위해 마련한 아파트에 도착하니 새벽 2시였습니다.
며칠 전 미리 와서 현장 실습하던 믿음이와 자고 있던 사람들이 눈을 비비며 우리를 맞아 주었고 오랜만에 형제들끼리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간 밀렸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전망창으로 내다보이는 저 멀리 바다는 새벽시간까지 오징어잡이 배의 불이 가로등처럼
환하게 켜있었습니다.
비가 오는 도로를 소리를 내며 속초 방향으로 간간히 달리는 차들의 모습 또한 그림처럼
보였습니다.

이튿날 일찍 동서들은 서울로 가고 남은 사람들은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강릉시내에 있는
막내 처제 집으로 갔습니다.
일행들이 쉬며 아내와 형제들이 점심을 준비하는 사이, 나는 가스건조기 노즐을 교환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일부러 이곳까지 직원들을 보낼 수 없어서 공구를 준비하고 노즐을 갖고 왔지만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서울과 대구에 몇 번 전화를 하면서 묻고 땀을 흘리다가 작업이 성공적으로 잘 되었고
건조기는 새파란 불꽃이 붙으며 정상적으로 작동을 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유한나 사모님의 기독자의 쉼터에 가기 위하여 일행을 태우고 몇 번을 길을
물어서 찾아갔습니다.
강릉에서 주문진 방면으로 가다가 좌측으로 강동면 사무소가 있고 그 옆 주유소와 붙은 길
( 굴곡이 심한 S 자 길임)로 조심스레 1 Km 쯤 가다 보니 철로가 있었습니다.
철로 못 미쳐 두 번째 집이 '기독자의 쉼터' 였습니다.

약속했던 시간보다 30분이나 이르게 찾아간 쉼터에는 한나님이 안 계셨고
서울서 온 목사님 가족이 소나타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고 파라솔을 마당에 펴고 있었습니다.

서로 인사를 하고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한나님이 직접 도배를 했다는 벽지와 엷은 황토색 바깥 벽체, 짧은 뜨락을 보면서 어릴 적
뛰놀던 촌집처럼 정감을 느꼈습니다.
뒤뜰은 가파른 언덕배기가 담을 대신하고 있는데 대나무 숲과 아름드리 밤나무가 하늘 높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70평 남짓한 쉼터는 한마디로 전형적인 촌집이었습니다.
70~ 80 m 거리에 철로가 있어 기차가 지나갈 때면 방구들이 약간씩 울릴 듯한 , 동화 속에서 정겹게 여겨지던 '기찻길 옆 오두막집'이었습니다.

이방 저방( 아주 크게 터놓은 방이 1개, 작은방이 1개) 문을 열어보고 집 전체를 한 바퀴 둘러본 후 마당 끝에 있는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기도를 하였습니다.
'기독자의 쉼터'라는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깃발 회원들 누구에게나 개방할 뜻으로 마련한 이 집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이 집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역사가 펼쳐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돕는 손길이 함께 하셨으면 하고 아뢰었습니다.

강릉으로 피서를 오면 이 쉼터에서 묵으며 정다운 사람끼리 마음을 터놓고 밤새워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면 안성맞춤이겠다 싶은 쉼터-
도회지에선 느낄 수 없는 여유가, 한가로움이 있는 그래서, 마음을 열어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이겠다 싶은 쉼터였습니다.

쉼터로 달려오시겠다는 한나님에게 주문진에서 만나자며 전화를 끊고 곧장 주문진 동서가 개원하고 있는 내과로 찾아갔습니다.
아내가 위 내시경을 하고 있는 사이에 김 목사님과 한나님이 내과로 찾아오셨습니다.
마른 오징어를 선물로 직접 손에 들고 오신 김 목사님과의 만남은 대구 오셨을 때를 비롯해서 세 번째 만남입니다. 마음속으로<어려운 형편일텐데...> 하면서도 갖고 오신 거라 덥석 받았습니다.

가족들에게 소개를 마치고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김 목사님은 염려했던 것보다 건강해 보였고, 한나님의 웃는 얼굴도 보기 좋았습니다.
쉼터를 마련하시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

내가 위 내시경 할 차례가 되었다는 간호사의 알림에 일어서야 했고 너무 짧은 시간에
아쉬움이 컸습니다만 짧은 시간의 만남은 오히려 더 큰 그리움을 지니고 살 수 있다는 마음으로 헤어져야 했습니다.
준비해 간 선물을 드리고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며 뒤돌아보는 두 분에게 손을 흔들어 드렸습니다.
이렇게, 강릉은 잊을 수 없는 곳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2002,0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