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미래를 헌정하라

2010. 6. 5. 09:02음악회

# 며칠 전 서울 명동에서는 특별한 공연이 있었다. 명동예술극장 재개관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펼쳐진 ‘신수정과 함께하는 명동극장 어제, 그리고…’가 그것이었다. 서울대 음대 학장을 지낸 예술원 회원 신수정씨가 1956년 3월 28일 당시엔 ‘시공관’이라 불렸던 이곳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네 살 앳된 나이에 해군정훈음악대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협연한 이후 이 공간에서 자신이 혹은 자신의 지인들이 펼쳤던 음악의 향연에 대한 기억들을 되짚어보는 시간이었다. 여기엔 초등학생으로 이 무대에서 연주했던 피아니스트 김영호 연세대 교수를 비롯해 우리 클래식 음악계의 원로인 첼리스트 나덕성 전 중앙대 음대 학장, 소프라노 박노경 전 서울대 음대 교수, 바이올리니스트 김민 전 서울대 음대 학장 등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추억의 시간들을 풀어냈다.

#이 공연의 1부가 과거를 기억하고 추억을 복원하는 것이었다면 2부는 젊은 미래파 음악인들의 작지만 단단한 향연이었다. 피아노의 조성진, 클라리넷의 김한, 역시 피아노의 제갈소망 등이 등장해 객석의 환호를 이끌어 냈다. 원로 소프라노 박노경씨의 손자 김한의 신기에 가까운 클라리넷 연주는 청중들의 흥을 한껏 돋우었고, 모스크바 영 쇼팽 콩쿠르와 하마마츠 국제콩쿠르의 최연소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동아콩쿠르 우승자인 제갈소망의 피아노 연주는 나이보다 훨씬 성숙한 격조와 우리 클래식 음악의 밝은 미래를 함께 보여줬다. 특히 피아니스트 신수정씨가 제갈소망과 함께 쇼팽 콘체르토를 연주하다 조성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페이지 터너의 자리에 앉아 악보를 넘겨주는 장면은 앞물결과 뒷물결이 함께 어우러져 흘러가는 강물 같은 인생의 한 단면을 보는 듯했다.

# 반세기의 세월을 뛰어넘는 흘러간 추억의 사진들을 곁들인 신수정씨의 맛깔스러운 회고담이 중간중간 이어지면서 세 시간이 넘도록 계속된 이날 공연의 마지막은 진정 감동이었다. 지휘자를 꿈꾸는 젊은 피아니스트 제갈소망이, 슈만이 짓고 리스트가 편곡한 곡 ‘헌정(獻呈·Widmung)’을 연주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미래파 젊은 음악가가 지난 반세기 아니 그보다도 더 앞선 우리 클래식 음악의 개척자들에게 바치는 마음의 헌정이었기 때문이리라. 그 옛날 나라 망한 식민지의 설움을 안고 뻥 뚫린 가슴마저 싸맨 채 시베리아 철도에 몸을 싣고 이역만리 낯선 땅으로 가서 클래식의 선율을 사무치게 끌어 안은 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쓸쓸히 생을 마감한 선배들이 있었기에 오늘 빛나는 음악영재들이 쭉쭉 뻗어나갈 대로가 펼쳐질 수 있음을 고백하는 듯한 그 헌정의 연주는 정말이지 가슴과 영혼을 파고 들었다.

# 현충일을 하루 앞둔 오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는다. 그리고 푸른 바다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처럼 푸른 잔디 위에 하얗게 아니 눈부시게 펼쳐진 호국영령의 수많은 비(碑)들 사이를 말없이 걸으며 그들에게 내 마음의 피아노를 펼쳐 ‘헌정’을 연주해 본다. 그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있고, 우리가 있고, 내가 있음을 알기에, 그들의 고결한 희생이 있어 오늘 우리가 이만큼의 자유와 행복 그리고 번영을 누리고 있음을 알기에, 가슴속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마음의 헌정으로나마 그 고마움과 감사함을 아뢰고 또 아뢰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헌정해야 할 것은 비단 음악과 마음만이 아니다. 천안함 46인의 수병들과 고 한주호 준위를 포함한 수많은 애국애족의 호국영령께 진정으로 바칠 것은 다름아닌 우리의 미래 그 자체다. 선거도 끝났고 민심도 확인됐다. 서로 찢고 찢는 바보 같은 짓거리가 아닌 서로 화해하고 하나 되는 지혜로운 미래, 다툼 없는 미래, 아름다운 미래, 조화로운 미래, 그래서 더욱 번영하는 미래! 그 미래를 그들에게 헌정해야 하지 않겠나.

정진홍 논설위원

출처 : jane의 生活日誌
글쓴이 : jan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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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헌정하라.

 

 

 신수정선생님께서 제자 제갈소망의 악보를 넘겨주고 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