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고서원을 다시 보다/ 대구 성동교회 제2남전도회 친목 야유회

2017. 12. 16. 23:20교회,신앙생활

대구 성동교회 제2남전도회 친목 야유회


임고서원은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에 있는 서원입니다.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鄭夢周, 1337~1392)님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8년 전 들렸던 적이 있는 임고서원을 다시 찾아본 느낌은 그때와 달리 많은 돈을 들여서 관광지로 탈바꿈시킨 것이었습니다.

충절로 유명한 포은 정몽주님이 대구와 가까운 영천 출생이니 여간 흐뭇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차장도 넓게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이 임고서원은 고려 말기의 충신 포은 정몽주님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명종 8년 1553년(명종 8)에 노수(盧遂), 김응생(金應生), 정윤량(鄭允良), 정거(鄭琚) 등 향내 유림들이 임고면 고천리 부래산(浮來山) 아래 창건을 시작하였다. 1554년(명종 9)에는 명종으로부터 사서오경과 많은 위전(位田)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최초의 사액서원인 백운동서원이 사액 된지 불과 5년 만에 사액되었으므로 초기 서원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그러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3년(선조 36)에 중건하였으며 재사액을 받았다. 1643년(인조 21)에 장현광을, 1727년(영조 4)에 황보인을 추가로 이곳에 배향하였다. 그러나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습니다. 이 때 역사가 깊은 이 서원이 훼철 된 것은 개경에 있는 숭양서원(崧陽書院)에서 포은 선생을 향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19년 존영각을 건립하여 포은 선생의 영정만 모시고 향사를 지내오다 1965년에 다시 복원하여 위패를 모셨으며, 1980년에 보수정화 하였다. 이곳에 임고서원이 들어서게 된 것은 포은 선생의 부모 묘가 서원 뒤편 부래산에 있기 때문이다. 부래산 기슭에는 포은 선생의 부 일성부원군 운관(云瓘) 묘와 어머니 변한국부인 영천 이씨 묘가 함께 있다. 그리고 서원 바로 옆에 묘소를 지키는 계현재(啓賢齋)가 있다. 
출처--> http://igseowon.alltheway.kr/?doc=sub_02

임고서원은 구서원과 신서원, 이렇게 2개의 서원이 동서방향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구서원의 경우 강당과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서원은 문충사(文忠祠)인 사당과 강당, 동·서재, 전사청 2동, 영광루(永光樓)인 누각, 비각, 고직사 4동 등 총 12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구서원과 신서원 모두 강당의 후면으로 사당이 배치되어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입니다. 



왼쪽에 보이는 큰 은행나무는 500년 쯤 되었다고 합니다.










왼 쪽에 보이는 것이 구서원입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햐~! 




500년 된 은행나무





신서원 모습


선죽교 .. 개성에 있는 선죽교와 같게 만들었다고합니다.
글씨는 한석봉의 글씨체를 탁본하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산위에 있는 정자는 조옹대라고 하는데 우리는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용연



용연


2009년 , 남전도회원들과 임고서원에 들렀을 때 사진,  그때는 지금보다 젊었습니다. ^^ 

http://blog.daum.net/faith-hope/15855829



2009년 , 남전도회원들과 임고서원에 들렀을 때 사진,

포은 정몽주

자는 달가, 호는 포은, 관향은 영일 (迎日), 영천시 임고면 우항동에서 운관(云瓘)의 아들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