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소천/ 임종을 앞두고 가족이 할 수 있는 것 /사랑의 고백, 화해, 믿음의 격려

2018. 10. 20. 11:45가족

임종을 앞두고 가족이 할 수 있는 것 쓰러지신 후 20일 만에 소천하기까지 기록

 

(이 글은 사랑하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우리 가족이 겪었던 일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사랑하는 이의 갑작스런 임종에 대비하는 도움의 글이 되기를 바라면서 사람이 어떻게 나느냐 하는 것보다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어 먼저 가시는 분을 보내면서 당황하거나

놓치는 일이 있으면 안되겠다 싶은 마음도 있어서 글을 남깁니다.

글 쓴이는 크리스챤이기 때문에 가치관과 사고, 내세관이 글을 읽으시는 분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머니 쓰러지시다. 

2018925일 아침에 어머니께서 쓰러지셨다.

평소 고혈압과 당뇨, 치매기가 좀 있으셨던 어머니께서 바로 3일전(9/23 주일날)에도 내가 교회에 모시고 갔다가 왔었는데 의식을 잃고 말씀을 못하셨다. 

 

 

2018925일 오후 4

추석 연휴기간이라 집에 있던 아들(정형외과 전문의)이 응급 처치를 했지만 호전되지 않아서 근무하는 **병원 응급실에 모셨다.

추석휴무로 출근을 않고 집에서 쉬는 내과 과장과 통화하는 아들이 있어 마음 든든했지만 한편으론 가슴이 탔다.

X-Ray, CT검사결과 신장기능이 매우 약해져 있고 약간의 폐렴 증상도 있는 거 같다고 했다.

폐에 물이 차서 어머니는 숨을 가쁘게 쉬셨다.

 

2018. 9. 25. 08시24분 추석 연휴 기간에 어머니 쓰러지시다.

 

갑자기 쓰러지신 할머니를 급히 간호하는 필자의 큰 아들과 증조할머니를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손자

 

 

증조 할머니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어머니의 증손자, 증손녀 

 

 

 

 

  

2018926

 

어제보다는 어머니 상태가 좋아지신 것 같다.

산소호흡기를 코에 꽂으시고 어머니는 눈을 감고만 계셨다.

할머니~~ 하고 부르면 눈을 떳다가 1초만에 도로 감으시고

미음도 두 숟가락 드시고는 안드셨다.

동생들이 돌아가며 어머니 병간호를 하였다.

 

**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간호하는 어머니의 큰 손자  

 

 

 

담임 목사님께서 병실로 심방오셨을 때 어머니는 제일 환하게 웃으셨다.

 

  

2018927일 오전10

어제보다 조금 더 좋아 지셨다.

1인실에 오시고 안정을 취하는 동안 등쪽 베드를 45도 정도 올려드려야 숨쉬기가 편하신 것 같다.

아내가 죽을 끓여와서 드렸는데 겨우 두 숟갈 드시고 밀어내셨다.

아내와  필자의 첫째 여동생이 상태를 보고 있다. 

 

 

  

2018929일 낮 11

 

MRI 검사결과 뇌의 미세혈관이 조금 막힌 거 같다고 했다.

어머니를 ***종합병원으로 이송했다. 아들의 동기인 신경외과 과장이

** 병원에서 갖고온 자료를 검토하고 여러 가지 체크를 해본 후 어머니는 뇌경색 초기고 심부전도 있고, 신장기능도 아주 약해서 앞으로 건강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후 4시 어머니는 신경외과 중환자실로 들어가시게 되었다.

면회는 오전 1120분에 20분간, 저녁 8시에 20 분간 할 수 있다고 했다.

 

 

2018930일 낮12

 

여 동생이 중환자실 면회를 다녀온 후 일가식솔 밴드에 올린 글

<엄마 양 손목을 침대에 묶어 놨더라.

엄마가 자꾸 바늘하고 산소호흡기 줄을 뺀다고... 엄마 상태도 많이 안좋다카네.>

 

 

2018930일 오후 5


필자가 가족밴드에 올린 글  

현재 중환자실에서 뇌경색 치료를 위해 수액을 넣는 중이다.빈혈이 있어서 코로 영양분을 공급하고 ...

수액이 공급되니까 신장이 약해서 배뇨가 힘들어 폐에 물이 차서 호흡 곤란이 온단다.

엄마한테는 고통스런 시간이겠으나 치료를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수액을 조금 적게 넣어라고 부탁했다. .치료하는 신경과 의사가 믿음이와 친한 동기라고하니 기다려보자.

상황이 뇌경색으로 바뀌어버리니 몹시 당황스럽구나.

 

2018930일 오후 9

 

필자가 가족밴드에 올린 글

중환자실에 어머니 면회를 하고 왔다. 손과 발이 침대에 묶인채 고통스런 표정으로 겨우 눈을 뜨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치료 목적이라고 이해하면서도... 어머니에게 참아내라고 하고는 같이 기도하는데 목이 메이더라..

내일 1120분에는 누가 갈래?

 

 

2018102일 낮 12

 

둘째 여동생이 밴드에 올린 글 

 

<엄마 보고 학원으로 가는 중... 주무시면서도 계속 얼굴을 찌푸리시는걸 보니 어디가 불편하신가봐요. 예전에 엄마가 방에서 잠시 기도하는 걸 들은 게 생각나요.

ㅡ아버지, 제발 잠결에 데리고 가이소ㅡ

 

필자의 답변 글

 

수고했다...고통없이 잠결에 소천하는 거야말로 최고의 복이지...

 

2018104일 낮 12

 

둘째 여동생이 밴드에 올린 글

엄마 뵙고 가요. 성동교회 젊은 목사님과 여전도사님이 다녀가셨어요. 내과의사가 엄마 상태를 설명해줬어요.

엄마가 어제부터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셨대요.

혈관이 막혀서 그럴 수도 있는데 다시 CT를 찍어서 확인하려면 조형제를 써야하는데 조형제를 쓰면 신장이 더 나빠져서 투석을 해야할 거래요.

 

그리고 엄마가 숨을 참고 있는 상태에서 찍어야하는데 지금 엄마 상태로는 숨을 참으라고 해도 못 알아듣거나 그럴 힘이 없어서 안될거래요.

관을 넣어서 뚫을 수도 있는데 역시 조형제를 써야해서 투석을 각오해야한데요. 그래서 의사는 권하고 싶지않다고 했어요.

컴퓨터로 신장수치를 보여주는데 지금 아슬아슬하데요.지금은 소변이 나오고 있어서 약물치료 중인데 소변이 안 나오면 돌아가시는거라고 했어요.

 

 2018년 106일 오후2

 

 남동생이 밴드에 올린 글

뇌출혈은 없고(염증 검사를 했는데 염증이 없다는 말을 잘못 알아들은 듯.).월요일 일반실로 옮길거라고.. 간병인을 어떻게 할거냐고....부기는 더 있는데 좋아지셨고...욕창때문에 옆으로 누워....

성동교회 목사님 기도오셨고 눈물로 반응하시네

 


2018년 106일 밤9

 

둘째 여동생이 밴드에 올린 글

엄마 어젯밤에 못잤다고 계속 자고 물으면 대답은 잘하는데 눈은 감고 ᆢ

손이 퉁퉁붓고 입술이 말라 핏기도 있고

마음이 아프네!..

잘가라고 하는거 보면 정신은 말짱해 다행이고 감사할따름.. 

 

2018년 107일 오후 1

 

큰 여동생이 밴드에 올린 글

우리 엄마는요~ 교인들 면회 오시면 제일 좋은가봐.

엄마! 전도사님 오셨다고 하니 고개들고 눈을 크게뜨고 활짝 웃으며 인사하네.

월요일 날 피검사해보고 염증이 없으면 일반병실로 올라간다카네

 

 

2018년 107일 밤9

 

필자가 밴드에 올린 글

방금 병원에 다녀왔는데 간호사가 내일 오후 2시 일반 병실로 옮겨게 된다고 1120분 면회 때 누가 오면 

일반 병실로 옮겨가는 문제를 의논하겠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내일 내가 11시에 병원에 갈께 

 

이날 피검사 결과는 염증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

 

2018년 108일 오전11

 

필자가 밴드에 올린 글

방금 중환자실 간호사한테서 전화왔다. 피검사 결과는 이상이 없단다.

2시에 병실 옮기는 절차를 밟아주겠단다.

 

2018년 108일 오후2

필자가 밴드에 올린 글

어머니를 방금 ***호실로 모셨다. 신경외과에는 2인실은 원래 없단다.

4인실로 모셨다. 간병인도 와있다.

 

2018년 108일 오후4

둘째 여동생이 밴드에 올린 글

소변은 많이 나왔네. 아픈 데는 없다하시고 계속 주무셔요.

 

2018년 108일 밤11

필자가 밴드에 올린 글

퇴근하고 갔다가 ** 언니랑 조금 있다가 나왔다. 의사를 만났는데 어머니는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2018년 109일 오전6

 

필자가 밴드에 올린 글

어머니 다시 중환자실로 가셨다

새벽 4시에 갑자기 숨이 가빠지셔서 중환자실로 급히 옳기겠다고  전화왔더라.

더 심해지시면 기도에 삽관 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

오전에 내가 면회를 가보께.  

 

2018109일 오후 12:52 10

필자가 밴드에 올린 글

조금 전에 중환자실에서 담당 의사를 만났는데 신장투석을 할건지 말건지 묻더라 .

신장이 약해져서 소변과 몸 속 노폐물들을 내 보내는 기능이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

어머니는 손등과 팔이 많이 부어 있고 피부가 얇아져 있어 붉은 자국이 많아서 안타깝더라. 호흡은 며칠 전과 같더라.

 

2018년 109일 오후 12:56

둘째 여동생의 답글

지난번에 내과의사도 그걸 묻던데...고령으로 신체 기능이 저하된 상태인지라

투석은 치료법이 아닌 생명을 잠시 연장해주는 방법이며 

환자의 고통을 감수해야한다. ..고 했어요.
엄마 의사(뜻)를 물어보는 게 좋을듯 해요.나는 아이들 아빠 의사를 무시하고 투석한걸 지금도 후회해요.. 
(여동생은 남편을 먼저 보냈다.)

엄마도 빨리 주님께로 가고 싶어 하시던데....

 

2018109일 오후 1:05 12 

 

필자가 밴드에 올린 글

<오늘 저녁8시에 어머니 면회마치고 신장투석하는 문제를 의논했으면 하는데 다들 병원에 올 수 있겠나?>

 

2018년 109일 오후 1:14

 

둘째 여동생 답글

대입 면접 때문에 아침부터 학부모 상담을 하고 있어요. 약속시간 잡고 하는 거라 어기기가 곤란해요.ㅠㅠ

난 그냥 따라가는 걸로 하고 내일 아침에 엄마 면회 갈게요

 

2018101002

오늘 면회 때 어머니의 컨디션은 좋아 보였고 눈을 떠보라고 말씀드리자 눈을 뜨시는데 눈의 촛점도 
이전보다 양호했지만, 팔은 여전히 많이 부어 있었고 호흡하시는 것도 더욱 힘들어 보였다.
예수 아시느냐는 나의 물음에 어머니는 눈을 감은채 고개만 끄떡이셨고 천당가고 싶으냐는 물음에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시다가 
투석을 하면 아프고 고통은 지금처럼 계속되는데 투석을 해도 병이 낫거나 발로 걸을 수는 없다고 
설명을 해드렸는데 "더 살아야지 .." 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투석이 뭔지도 모르시는 것이겠지...생각했다.   
우리는 면회 후에 1층 로비에 앉아서 어머니 치료 방법과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의논을 한 결과
수액은 덜 사용하면서 폐에 부담이 덜가게 하고 투석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투석을 해서 살릴 수만 있으면 당연히 해야 되겠지만 투석을 하다가 돌아가실 수도 있고 투석의 그 고통을 어머니께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마음이 아팠다.
더 살아야지 하신 어머니의 말씀을 동생들에게도 전했으니 동생들 마음도 아팠으리라....
동생들도 그런 생각을 했겠지만 진작 어머니를 모시고 큰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진작 받아볼 걸...
동네 병원에 모시고 다니며 고혈압, 당뇨만 관리를 체크해드렸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마음에 심히 큰 부담이 되었다. 

 

2018 10 10일 오전 7:48

필자가 밴드에 올린 글

새벽에 중환자실에 전화해서 간호사에게 투석을 안하겠다. 기도삽관하지 않겠다.
뇌경색 호전은 바라지 않을테니 수액은 량을 줄여달라,  고통없는 치료를 해달라고 전하고. 
호흡이 심각해지는 상황이 오면 어머니의 수명이 다한 걸로 알겠다. 
심정지가 되면 전기충격기 사용하는 게 원하지 않는다. 주치의에게 전해달라고 했더니 전하겠다고 했다.  
11시에 면회 와서 (주치의에게) 직접 말해달라고 했다. 

 

20181010일 오후 3:09 

 

필자가 밴드에 올린 글

1120분 면회 시간에 보니 어머니께서 많이 다운되셨더라.

 

20181010일 오후 9:23 12 읽음

큰 여동생이 올린 글

엄마가 오늘은 영 안좋으네. 어제보다 숨이 많이 차나봐.

 

2018년 1010일 오후 9:44

필자의 답글

담당 의사들(레지던트, 인턴으로 보이는) 모두가 점점 안좋아질거다 그러더라 .. 수고했다..
아침에도 숨가빠하시니까 앉혀 놓으셨더라

 

나는 면회할 때에 어머니 귀에 대고 십자가의 강도 이야기를 해주며 예수님의 피공로로 우리는 죄인이지만
천국 갈 수 있다고 상기시켜 드렸다
.

아프고 힘들지만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셔서 고통을 겪으셨다고 십자가를 생각하며 이기시라고 

천국에서 다 같이 만날 수 있다고 희망을 심어 드렸다. 그러고는 갈 때마다 기도를 했는데 어머니는
들으셨는지 어쨋는지  모르겠다.

 

이대로 중환자실에서 가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20181011일 오전 8:11

필자가 밴드에 올린 글

내가 오늘 오전에 면회 갈게.. 저녁에는 목장 모임을 인도해야해서  ... 누가 가보도록 해라

 

20181012일 오후 4:09 11 읽음

필자가 일가 밴드에 올린 글

오전에 작은 오빠와 언니,, 하고 같이 면회했다. 중환자실 담당 간호사에게 현재 치료하는 그대로
1인 실로 옮겨서 치료하면 좋겠다고 했더니 안된다고 하더니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것은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다면서....
요양병원이 정해지면 진찰 기록들, 제반 서류를 다 주겠다고 하네
..

 

요양병원으로 옮기면

1. 우선 면회가 자유롭고

2.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보내드릴 수 있고

3. 그간 동생들이 못 모시고, 미흡했던 효도 부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4. 교회 성도, 어머니 친구들도 찾아올 수 있고

5. 예배가 자유롭고( 1인실 경우)

    좋은 점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20181013일 오후 10:13

 

필자가 일가 밴드에 올린 글

믿음이가 친구인 과장과 통화를 했다. 요양병원으로 모시겠다고 했고 친구 한사람이 얼마전 개원한 프라임 요양병원에도 월요일날 가기로 연락해 놨다.

어머니께서 월요일까지 버텨 주셨으면 싶구나

 

20181014일 오전 7:09

필자가 밴드에 올린 글

<임종 ... 그것은 누구에게나 온다.>

 

밴드에 아래와 같은 터넷에서 퍼온 글을 올렸다. 동생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퍼온 글)

어느 날 간이식 수술을 앞둔 한 기업의 회장을 전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마음에 부담이 컸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자 준비 기도한 후에 병실로 향했다.

처음 나를 바라보는 그 분의 눈빛이 어찌나 매섭던지, 아마 오랜 경험이 없었다면 금방 뛰쳐나갔으리라 생각하면서 병상으로 다가섰다

병원의 원목입니다. 친구 분의 부부께서 얼마나 선생님을 사랑하시는지, 이렇게 제가 끌려 왔습니다라며 접근하자,

그 분은 , 목사가 필요 없는데요라고 대꾸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일 아침에 중요한 수술을 앞두셨다는 말씀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이왕 왔으니 수술을 위해 하나님께 잠깐 기도해 드리고 가겠습니다라고 제의하자, 그 분은 퉁명스럽게 “1분만 하시죠라고 대답했다.

이 말은 기도해도 좋다는 뜻을 담은 자존심 세운 표현임을 잘 알고 있다. “더 짧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한 후에 친구 부부와 함께 손을 잡고 주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그때 기도하던 중에 성령님의 강한 임재를 느끼며 주님께서 이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붕을 뚫고 병상을 달아 내린 중풍병자의 친구들처럼, 이 분에게 친구를 통해 구원의 계획이 있음을 확신하면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 분은 겉으로 강한 척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급박한 상황인지 깨닫고 절대자를 찾고 있는 그 분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받아주신 것이다. 한참 동안 기도한 후에 젖은 눈빛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뒤로하고 내일 수술 전에 간단히 예배를 드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이튿날 그 분을 소개한 친구 부부와 함께 수술을 위한 예배를 드렸다. 준비된 말씀과 함께 초신자인 친구가 적어온 기도 쪽지를 부스럭거리며 꺼내 떨리는 음성으로 기도할 때, 방안이 환해지고 성령님의 위로와 사랑이 넘쳐나는 것을 경험했다.

그런 후에 그 분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병상에서 세례를 받았다. 간이식 수술 후 밀려오는 고통 속에서 주님께 의지하는 믿음으로 견뎌 내었다

병상에 누워 고통을 겪으면서 의연히 주만 바라볼지라를 찬양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해갔다.

어느새 날카롭던 눈빛은 어린 아이 같이 부드러워졌고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질병은 그 분을 가족으로부터 분리시켰지만그 분은 죽음까지 초연히 받아들이고 주변을 깨끗이 정리한 후에 떠났다. 그동안 영적으로 보살펴 주었던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은 철저함까지 보였다.

 

 

20181014일 오전 7:10

필자가 밴드에 올린 글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힘겨워하시는 어머니와 보는 우리 모두가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하나님께 어머니가 가시는 것은 이 땅의 모든 수고를 놓고 편안한 곳으로 가시는 것이기에 우리가 슬퍼만 할 일은 아니다. 천국에 가면 다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중환자실에서 혼자 쓸쓸히 떠나시지 않고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동안 우리가 하지 못했던 " 엄마 사랑해~" 라는  고백을 하고 어머니의 자식으로 이 땅에 살아오게 된 것을 감사하는 마음을 고백하면서 찬송과 기도 가운데 
보내드리는 시간을 갖는다면 어머니도 좋아하실 거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거라 생각된다.
또, 지금 어머니는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있을텐데 어머니에게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예수, 구원, 천국에 관해서만 말해주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해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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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에서 퍼온 글)

번은 어느 자매로부터 혼수 상태에 있는 아버지에게 전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당시 자매의 아버지는 89세로 임종 직전의 상태였다

내가 사역하는 병원이 아니라, 일부러 시간을 내어 중환자실로 가는 마음은 온통 기도뿐이었다. 어떻게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가

주님의 임재와 도우심을 바라며 순종하는 마음으로 다가갔다.

믿지 않는 둘째 아들이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리를 내주었다. 산소 호흡기를 끼고 여러 개의 튜브가 몸에 부착된 상태에서 깊은 잠을 자듯이 누워 있었다. 눈을 감은 지 오래 되어 눈가에 이물질이 말라붙은 자국이 선명했다. 가까이 다가서서 손을 꼭 잡고 한 손으로 그 분의 어깨를 약간씩 쳐주면서 복음을 전했다.

마치 두 사람의 인격적인 만남처럼 대화식으로 전도했다. 지금 눈이 떠지지 않고 온몸이 움직이지 않는 답답한 처지에 있지만나의 말이 잘 들릴 것을 믿는다며 가족에게 이해를 구했다. 나는 따님의 부탁을 받고 찾아왔으며, 하나님께서 할아버지를 사랑하신다는 것과 이 세상의 시간은 끝나가고 있지만 분명히 새로운 세계가 준비돼 있다고 전했다. 그곳이 곧 천국이고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천국에 갈 수 있으며,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을 듣고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이르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지난날의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할 것과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마음 속으로 따라 하도록 했다. 허리를 구부리고 10분 정도 전도했을 듯하다

10분간은 복음을 농축한 것으로 단번에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정열을 쏟아 넣었다고 할 수 있다. 기도를 마치고 땀을 닦으며 돌아서려는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딸이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인가 하고 돌아보니, 할아버지께서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엔 이슬이 맺혀 있었고 입가엔 약간의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마치 누가 이렇게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는가 확인하려고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온 가족은 아버지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분명하다며 믿지 않던 아들들까지 신기하듯 나를 쳐다보았다. 딸이 기뻐하며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한참이나 우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확신하며 돌아왔다. 훗날 예수님을 영접한 할아버지는 갈 곳을 확실히 알았다는 듯 평안히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 가족의 요청으로 장례식을 도와 주었다. 할아버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통해 구원의 증거를 온 가족에게 보여 주고 떠났다

이로 인해 할아버지의 슬하에 아홉 자녀들 중 믿지 않던 여섯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라면서 전도 장례 예배를 드렸다. 참석했던 많은 젊은 남녀들이 감동을 받고 믿음을 가지겠다고 고백했다.

하나님께서 한 영혼이라도 소중하게 찾고 계신다. 우리는 어떤 상황이 주어져도 전도 못할 것으로 여기고 거역해선 절대 안 된다

기도와 순종만이 주님의 역사를 경험케 한다.

발인 예배를 인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할아버지는 어느 큰 제약회사의 회장이었다. 장례식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떠나신 할아버지를 깊이 추모했다.

 

20181015일 오전 11:47

 

필자가 밴드에 올린 글

어머니께서 곧 운명하실 것 같다. 

 의식이 없고 불러도 대답이 없고 들리느냐 물어도 반응이 없구나

간호사는 모니터 상으로는 어제와 똑같다고 하더라

 

중환자실에서 어머니 귀에 들리도록 가까이 입을 대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내가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엄마 ~~ 우리를 잘 길러줘서 고마워요.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조금만 더 참으면 이제 천국에 가면 아프지 않고 고통없는 그런 나라니까 엄마가 평생 믿으셨던 예수님께 가시면 거기 엄마 친구들, 성동교회 권사님들 다 만나시게 될 겁니다. 

엄마! 엄마~~ 심장이 많이 약해져 있고 폐도 물이 차고 콩팥도 다 망가져서 손을 쓸 수가 없대요. 때문에 투석해도 안 된다고 의사가 그러네요. 하나님께서 사람이 70살까지 살 수 있는데 건강하면 80까지 산대요. 그런데 엄마 팔십여덟까지 사셨으니까 천수를 누리신 거에요. 예수님도 세상에 계실 때 십자가에서 고통 받으셨거든~~예수님 생각하고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천국가요... 예수님 내 이 고통 너무 힘드니까 도와주세요 하고 기도 하세요. 하나님께 기도 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고통을 들어주실거예요. 엄마 우리 걱정하지 말고 이제는 편안하게 하나님께로 가세요. 엄마 자리를 천국에서 마련해 놓고 기다릴겁니다. 잘했다 칭찬들으실겁니다. 예수님 만나면  예수님께 "감사합니다. 사랑해주시고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 져주시고... 감사합니다." 그러세요.  엄마 천국에서 만나요.  엄마 사랑해 엄마 엄마~~

 

어머니께 아들로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심정으로 고별의 말을 하는데 내 눈에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2018년 10월 15일  낮 12:00 

필자가 밴드에 올린 글

시간나는 누가 대기실에 좀 와주면 좋겠다 ..나는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까지 다하고 나왔다.. 천국에서 만나자고...

 

2018년 10월15일 오후2시30분

어머니를 프라임 요양병원으로 이송했다.
 

이미 어머니는 위독해진 상태다.
대구의 대형 종합병원에서 그것도 필자의 아들 친구가 직접 치료에 매진했지만 방법이 없다. 

어머니의 증상은 하루 하루 더 나빠지는 상황이다. 

 

평소 증조 할머니를 무척 좋아했던 어머니의 둘째 증손자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2018.10.15.17시29분  

 

담임 목사님과 부목사님께서 오셔서 예배를 인도하셨다.                2018.10.15.18시22분 

 

 

요양병원에 모셔 놓고 아내와 필자의 남동생이 어머니 곁에서 간호하고 있다.

손등은 터질듯이 까맣게 부풀어 올랐고 다리까지 많이 부어 있는 모습

 

 

 

2018년 1015

어머니께서 담임 정목사님을 찾으셨다. 목사님께 연락드렸더니 노회 기간임에도 오셨다.

담임 목사님과 부목사님이 같이 오셔서 기도해주셨다.

 

2018년 10월15일 밤 7시
어머니의 기운이 끝나간다는 것을 느낀 나는 동생들에게 모두 바깥에 나가고  한 사람씩만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을 해라.  잘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천국에서 만나요. 엄마한테 잘못한 거,
속썩힌 것, 기억나는대로 용서해달라고 해라 하고 지시했다.

그렇게 우리는 말씀을 못하시고 누워서 가쁜 호흡을 힘겹게 하시는 어머니와 화해와 사랑의 고백, 천국에서 만날 것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다. 밖에서 들으니 한 여동생은  "엄마~ 미안해, 엄마! 울지마~~~" 하면서 울부짖고 있었다.  

 

우리가 바쁘게 살 때 우리를 대신하여 손자들을 키워주신 어머니, 이제는 의사가 되어 믿음이는 할머니 입속에 호스를
넣고
이물질을 빼내 드렸다.

 

어머니의 큰 손자가 흡입기 호스를 넣어 이물질을 빼내고 있는 모습

 

 

+


어머니 소천 10분 전, 임종직전, 어머니께서는 고통없이 아주 조용히 육신을 떠나 천국으로 가셨다.

이 동영상은 어머니께서 운명하시기 10 분 전, 11시30분 경 어머니의 둘째 딸이 찍은 것입니다.

 

2018년 1015일 밤 1140

어머니께서 마지막 숨을 멈추시고 입을 다물고 허공을 바라보실 때 나는 손주 셋과 나란히 서서
찬송가 338장을 불렀고 
필자의 동생들은 소리치며 울며 어머니를 깨웠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다시 깨어나시고 ... 이러기를 두 번 하셨고 밤 11시 40분 경 끝내 둘째 딸이 지키고 있는 병실에서 어머니는 소천하셨다.

 

 

병실을 끝까지 지킨 어머니의 둘째 딸과 손자가 이미 운명하신 어머니의 손을 붙들고 있다. 

 

 

2018년 10월15일 밤 11시 40분에 어머니 소천 

둘째 여동생이 밴드에 올린 글

돌아가시기 10분 전쯤찍은 것 같아요찬송가 틀어놓았더니 얼마나 곤하게 주무시는지 이 동영상 찍고

이찬수목사님 설교말씀 틀어놓았더니 잠시 눈을 뜨고 쳐다보시더니 가만히 눈감고 계셔서 난 말씀 들으시나 보다 했어요

내가 병원 암환자들 죽어 가는걸 여러번 봐서 죽기 전에 날숨 내쉬는건 듣기만 해도 아는데 엄마는 그런게 전혀 없어서 주무시나 보다 하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산소수치를 보니 위의것은 영 이고 아래것은 45더라구요벨을 눌러도 안 와서 5츠으로 뛰어가서 간호사 불러왔을 땐 아래것도 숫자가 안보였어요 

나는 졸까봐 미리 커피를 세잔이나 먹어서 그런지 잠도 안오고 ...

 

필자의 답글

<수고 했다... 어머니 임종을 끝까지 지켜보았구나 ..>

 

그렇게 어머니는 떠나셨다. 좋은 계절에 자녀들의 사랑한다는 고백을 들으실 때는 같이 오른 쪽 눈에 눈물을 비치시더니 그렇게 천국길 떠나셨다. 

 

***장례식장에 전화를 했더니 금방 엠블런스가 왔고 나는 엠블런스에 동승하였다. 

 

 

20181016일 오전 2:20

이미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다 한 우리기에 나는 동생들에게 지금은 오지 말고 내일 아침에 일찍 *** 장례식장으로 오라고 밴드에 올렸다. 

 

필자가 밴드에 올린 글

<어머니께서 소천하셨다. 좀전에 *** 병원 영안실에 모셨다. 장례식장은 201(특실)을 이용하기로 계약했다. 발인은 목요일날 하기로 했다

( 시간 미정) 장지는 ** 기독교 묘원(한의대 옆) 전에 준비했던 곳으로 정했다. 입관예배 및 발인 예배는 성동교회 담임 목사님 

스케쥴에 맞추어 드리도록 할려고 한다.

동생들은 각자가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께 날이 밝는대로 알리고 출석교회 성도들이 단체로 조문와서 예배드릴 계획이 있으면 

내게 미리 말해다오. 시간이 겹치지 않도록 

해야 된다

부고를 알릴 곳에는 각자가 카톡이나 문자등 각자가 알아서 보내면 된다. 부의금은 각자 앞으로 들어오는 것은 도로 다 줄테니까 그렇게 알아라.

 

2018년 10/16 아침 0830분까지 2201호실로 오기 바란다.

남자들은 검은 상,하의 흰와이샤스, 검정색 넥타이 착용하고 오고, 여자들은 검정색 한복을 입도록 하자. 옷이 없으면 병원 장의 센터에서 빌려 입으면 된다.

201호실 대기실 안쪽에 샤워실이 있다. 각자 치솔, 수건, 성경책, 핸드폰 충전기, 볼펜, 연락처 노트 등은 갖고 와야된다.

201호실 대기실은 좁아서 밤에 차 없는 몇 사람만 자고 , 차가 있는 사람들은 밤12시 이후부터 새벽7시 까지는 집에서 자고 오도록 하자

차는 성동교회 주차장에 주차하면 된다.>

 

 

2018년 1016일 오전 6:29

막내 여동생이 올린 글

 

<요양병원 근무하는 집사님이 돌아 가실때는 숨을 거칠게 헐떡

거린다 했는데 기도 한 대로 잠결에 편안히 가셔서 참 감사합니다. 근데도 난 밤새 잠이 안오고 눈물이 난다

엄마가 줌환자 실에서 '더 살고싶다'고 하고 내 이름을 급하게 두번 부르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냥 나온것도 후회되고 어제 저녘엔 늦었다고 미안하다는

말의 의미를 알겠어서, 성이아빠가 호상 이라고 울지말라 해도 자꾸ᆢ

 

 

20181016일 오전 7:28

필자가 밴드에 올린 글

<아침 830분에 성동교회 목사님께서 임종예배 인도하러 오시기로 했다

상복을 입고 오든지 예배부터 드리고 상복으로 갈아입어도 된다. 옷이 없으면 그냥 와서 빌려 입으면 된다.

지금 노회 기간이라 일찍 임종예배 드리고 노회에 참석하러 가셔야 되기 때문에 일찍 오시기로 하셨다.>

 

20181017

필자가 밴드에 올린 글

동생들에게 부고 보낼 때 문구를 제시했다.

 

이름에 각자의 이름 넣고 문자로 부고를 보내라

 

<부고>

*** (장자 ***)께서 2018.10.16 새벽에 향년 88(노환)로 소천하셨기에 알립니다.

빈소:대구 *** 병원 장례식장 **

전화: 053-958-9000

주소:대구시 동구 아양로99

발인:2018.10.18. 06:40

장지:경산시 유곡동 산 31-1 기독교 묘원

 

 

 입관 할 때 염을 하던 분이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는 여지껏 이렇게 평온한 모습으로 가신 분은 처음 봤다고 하더라며 이번에 장례 전체를 맡아 도움을 주신 분이 전해 주었다. 

 

 

평소에 어머니께서 돈을 아끼시던 대로 꽃장식은 30, 50, 70 만원짜리가 있었는데 50만원 짜리로 꾸몄다.  
운구차도 별도의 리무진을 이용하지 않고 영구차(버스)를 이용했다. 어머니는(영혼) 이미 천사들의 손에 이끌리어 아름다운 

하나님의 낙원에 올라가셨기 때문이다.

 

 

2018년 10월18일 오전 6시 40분 발인예배를 드린후 ** 기독교 묘원으로 약 40분간 가서 미리 준비해둔

묘에 아버지 옆 자리에 어머니를 합장(합분)하여 모셨다..

대리석으로 하단을 받치고 고급스럽게 꾸밀 수 있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비석도 검소하게 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서...

 

 

*** 병원 장례식장을 이용하여 조문객들(지인들)을 만났으며 내가 출석하는 교회 성도들과 동생들이 출석하는 교회의 

성도들의 사랑가운데 장례를 잘 치루었다.

특히 우리 다섯 남매가 이번 장례를 통해서 서로 신뢰하고 하나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모든 일을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번 어머니 장례 스토리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간증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려야 될 것 같다.

 

 

20181018일 오후 2:59

필자가 밴드에 올린 글

<어머니, 아버지 곁으로 가셨다양지바른 쪽에 자리잡고 편안히 누우셨다.

이번에 어머니 이곳에 모시는 일에 모두 수고했다. 모두 사랑한다~ >

 

 

2018년 1018일 오후 3:14

막내 여동생이 일가 밴드에 올린 글

<참 예쁘고 좋네요!!!

큰 오빠가 가장 수고많이 하셨어요 늘 자랑스럽고 사랑해요 !~~>

 

1018일 오후 3:27

둘째 여동생이 일가밴드에 올린 글

<공원묘원같지 않게 아담하고 예쁜 곳이더라구요. 오빠도 언니도 그동안 엄마 모시느라고 너무 고생하셨어요.

옛날에 박정희 대통령이 엄마에게 효부상을 주었지요. 비산동 살 때 장농 속에 든 걸 보았었는데 부상이 은수저 한 벌이었다고 

엄마가 말씀해주셨어요.

효부였던 엄마에게 하나님이 주신 부상은 엄마를 복의 통로로 삼으신 것이 아닌가 싶어요. 오빠랑 언니 내외분도 후손들에게 

복의 통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1018일 오후 3:47

큰 여동생이 일가 밴드에 올린 글

 

<묘가예쁘고.참하네요.

오빠언니수고많았어요.

든든한 오빠, 착한언니 때문에 우리는 엄마걱정 안하고 잘살았어요.

항상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해요.>

 

 

2018년 1018일 오후 7:10

남동생이 올린 글

<합장묘라고 크게못한다 해서 걱정했는데 ..잘 만던 것 같네요

배수가 잘되게 바닥 경사(구배)를 주겠다고 김 장로님이 예기헸는데...

그동안 두 분이 수고 많았습니다

부끄러워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큰 영예를 받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빈 방을 보고 가슴아림의 고통을 겪으실 두 분과 가족의 아픔을 얼마나 나눌 수 있다면 ....부끄러운 변명일뿐..

거듭 고개를 들지 못하겠습니다.

아련한 기억속에 어머니의 효부상 인가? 뜻밖의 아버지의 대구시장 효자상 수상이 문득 자랑스러운 오늘입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1018일 오후 7:10

필자의 답변

<모두 고맙다.. 믿음이 엄마가 어머니한테 친정엄마 대하듯 잘했고..고생했지...

그래도 어머니께서 현명하게 처신하셨고 워낙 어질게 사셨으니까 화목했다.>

 

2018.10.15. 1140분 노환으로 쓰러지신지 20일 만에 어머니는

평소 기도하시던 대로 잠자듯이 편안히 소천하셨고산시 유곡동 산 31-1 기독교 묘원에 육신을 누이셨다.

손자 소망이가 미국 유학중이어서 사랑한다는 음성을 듣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지만 10월20일 시애틀 연주를 앞두고도 멀리서 날아온 손자의 사랑을 아시리라 믿는다.  

 

우리 어머니는 부요하게 잘 사시진 못하셨어도 5남매를 잘 기르셨고 큰 아들, 며느리, 손자 , 손부 , 증손주 셋과 함께 

여덟 식구( 둘째 손주 미국 유학중) 와 한 집에서 사셨고 증손주들의 재롱과 성장하는 모습을 보시며 아침 저녁 한 식탁에서 식사하셨고 

주일이면 같이 교회에 출석하시며 

향년88세 (31년 생, 양띠) 를 사시다 천국으로 가셨다. 

 

멋지게 다듬어진 숲 사이를 지나면 펼쳐지는 아늑한 산비탈,

이미 어머니 친구들이 묻혀있는 그곳에 이제 어머니도 함께 계시게 되었다. 
36년 전에 먼저 떠나신 아버지와 나란히 한지붕아래 누우셨다.

 

훗날 우리 부부도 이세상을 떠날때 이곳에 합장을 해서 묻어 주면 좋겠다.

 

 

큰 공원묘원은 아니지만 교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묘원 입구에서 맞은 편을 본 사진

 

 

 

묘원 입구 좌측에 있는 동산

 

순서대로 묘가 조성되는 모습

 

 

 

석곽을 한 묘들이 많이 있었지만 동생들과 의논하여 검소하게 

봉만 하고 비석도 조촐한 것을 세웠는데 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보기 좋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