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조심 해야제..

2008. 11. 29. 23:54칼럼

 

 

 

창 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화단에 나무들이 갈색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요 며칠, 출근 채비로 넥타이를 매며 밖을 바라볼 때 비둘기 한마리가 에어컨 위, 혹은 난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저께는 에어컨 외기통 옆에 비둘기 한 마리가 알을 품고 있다고 어머니가 내게 일러 주셨다.
낮에 무료히 혼자 계시다가 비둘기를 보신 것이다.

날씨도 추운데 몇 날 며칠을 꼼짝하지 않고 알을 품고 앉아 있는 것이 측은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아침마다 조심스레 창문을 열고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몇 날인지, 오랜 날을 그러고 있더니 어느 날 저녁 식사 시간에 어머니께서 “ 비둘기가 새끼를 낳았네.... 두 마리를 낳았는데 어미는 안 보이고...“ 하셨다.

이튿 날 날이 밝을 때 창문을 열고 바라보니 갓 태어난 비둘기 새끼 두 마리는 있는데 어미는 보이지 않았다.
- 날씨는 추운데 저 것들이 어떻게 살지? ... -  은근히 걱정이 되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 주어야할지
생각해 내지 못하고 그냥 창문을 닫고 자연의 생존 원리에 맡기기로 했다.

궁금해서 한 번씩 내다 보면 새끼들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다.
그 후, 한 번도 어미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난간 쪽으로 수북히 쌓여 가는 비둘기 똥을 보면서 어미가
계속 새끼들을 보살피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비둘기 똥이 시커멓게 쌓여갔지만 새끼들 다 키워 비둘기 가족이 떠나가면 치우자 싶어 그냥 지냈다.

그런데, 그저께 퇴근하고 온 내게 “비둘기 새끼들을 경비원이 와서 가져 갔다.” 어머니가 이르셨다.
“경비가 왜요?.”
”아래 층에서 남자가 올라와서 이 집에 무슨 일로 시커먼게 흘러 내립니까? 하고 보자카디 비둘기 새끼

들이 있는 것을 보고 경비원을 부르고 청소하는 아줌마도 부르고 해서 똥도 치우고 새끼들도 가져 갔다.“

하셨다.
비둘기 똥이 아래층까지 흘러내릴 줄은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비둘기 똥이 화근이었구마는 -

혼자 속으로 중얼 거렸다.

새끼를 키우는 본능에 따라 근 십 여일을 먹지도 않고 좁은 공간에서 꼼짝하지 않고 알을 품고 앉았던 어미 비둘기, 새끼가 부화하자 먹이는 부지런히 물어다 새끼 입에 갖다 줄줄은 알았지만 자신의 똥 때문에 아래층

남자에게 들켜 새끼를 잃어버리고 말다니....

저녁을 먹으며 방송을 들으니 전북 익산에서 납치된 여 약사가 피살 되었다고 한다.
고급 승용차 때문에 납치당해 피살되었다는 방송을 들으며

-자동차가 화근이었구마는 -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새끼가 없어진 그 이튿 날 아침, 잠이 설풋 깨는데 구구구 하는 비둘기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새끼를 잃어버린 어미 비둘기가 창 밖 어딘가에 앉아서 새끼를 찾으며 우는 울음이었다.

전에, 우리가 황금동에서 살고 있을 때 소망이가 초등학교 4~5학년 무렵이었던가,

피아노를 배우러 산격동 김 집사님 집으로 혼자 다닐 때 어린 녀석 혼자 다니다가 혹 납치라도 될까 염려가

되어 일부러 다마스를 타고 다녔던 적이 있었다.
**** 장사를 하면서 큰 매장에 드나드는 나를 돈 꽤나 있는 사장으로 납치범들이 오인할까봐 나 본시 돈 없는

사람이오 보이려고....

비둘기가 구구구 우는 소리를 잠결에 며칠 더 들으면서

<불쌍한 녀석,  왜 똥을 아무데나 싸가지고 새끼를 잃고 그래...

함부로 똥을 싸니까 새끼를 잃어버리지... 니 새끼들 경비원이 갖고 갔다. > 

계속 구구구 하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14, 5 년 전, 다마스 타고 다녀야 된다던 내게

“누가 당신 아들 납치할까봐... 남이 들으면 웃는다 ”

핀잔하며 웃던 아내를 따라 나도 피식웃으며 < 그래도 조심해야제....> 내가 했던 말을 떠올려 보았다.



200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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