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에게 사랑받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2008. 12. 14. 23:11칼럼

지난 월요일은 평소 친분이 있던 권중완 목사님(대남 침례교회 담임)'침례교 부흥사회 19대 회장 취임 축하 예배'가 있었던 날이다.

권 목사님은 나와 동갑으로서 내가 중앙침례교회 다닐 때 함께 신앙생활을 하셨던 분이고 내가 존경하는 목사님 중의 한 분이라 바빴지만, 시간을 내어 축하 예배에 참석했다.

며칠 전에 아는 사람이 전화로 이 행사를 알려주었고 서울의 김충기 목사님께서 설교를 맡으셨노라고

했기에 나는 김 목사님도 만나 볼 겸해서 본 교회 최 전도사님의 따님 결혼식은 부조만 전달케 하고 겹치는 두 행사 중 권 목사님 쪽으로 선택했다.

 

예배와 격려사, 축사, 선물 증정 등 모든 순서를 마친 후 성도들이 먼저 나오고 목사님들이 계단을 내려오실 때 나는 한쪽 옆에 서서 아는 목사님들과 교우들에게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침례교 교우들은 나를 '장로'라 불렀다.

1989년도에 대명침례교회에서 '집사 안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일부 침례교회에서는 '안수집사''장로'로 호칭하고 있다.

간혹 만나는 침례교인 들이 그렇게 호칭할 때마다 나는 싫었고, 개인적으로는 침례교회의 특색을 지우는 일인 것 같아 이 호칭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서 침례교회를 잠시 소개하자면 한국의 정통 침례교회의 모태는 미국의 남침례교회다.

미국은 장로 교단보다 침례 교단이 훨씬 크다.

미국 침례교회에서는 목사 안수식 때 안수 집사가 목사 안수에 참여한다.

 

카터 대통령이 왜 집사일까? 의문이 가는 사람은 미국의 교회 사정을 알면 의문이 풀릴 것이다.

침례교회에는 원래 장로 제도가 없고 안수집사가 교회의 모든 정치를 하기에 안수 집사가 장로 교회의 장로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어 있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나갔는데 다시 오늘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

반갑다고 손을 맞잡고 인사를 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계단을 내려오시는 김충기 목사님을 발견하고 조금 떨어진 곳이었지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목사님께서도 나를 알아보시고는 얼굴 가득 웃으시며 한 걸음 뒤에서 따라 내려오시는 사모님을 돌아보시며 무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사모님의 얼굴도 금세 환하게 변하며 나를 향해 무어라고 말씀하셨는데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 때문에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사모님은 내가 청년 시절 교회 생활할 때 나와 매우 친한 단짝이었다.

교회의 여러 일에 관하여 함께 의논하며 걱정하고 기도하는 동지였다.

김 목사님께서 집회 인도차 교회를 비우시고 안 계실 때면 사모님께서 교회의 여러 대소사에 대해서 일을

 

하셔야 했는데 의논의 대상이 내가 되었다.

사모님께서는 집안에서 주무신 적이 거의 없고 매일 밤 교회에 나오셔서 밤늦도록 기도하시며 밤을 보내신 분이셨다.

슬하에 성호, 성범, 성국. 정란 31녀를 방이 아닌 교회 바닥에서 키우신 분이시다.

내가 기도실을 자주 이용하며 교회에서 자는 일이 많았기에 사모님의 그런 생활을 알 수 있었다.

 

김 목사님께서 계단을 내려 가까이 오셨고, 나도 비켜서 있던 자리에서 목사님께 다가갔는데 김 목사님께서 우측 팔을 내 어깨 위로 얹으시며 포옹을 하시길래 얼떨결에 나도 목사님의 어깨 위로 팔을 돌려 마주 껴안았다.

우린 교회 출입구 통로 중앙에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반가움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 주기라도 하는 듯 연기자처럼 하면서 많은 성도들의 시선을 받았다.

몇 초의 시간이 지나가고 포옹을 마친 목사님께서는 옆에서 웃고 계시는 사모님께 "장로 되었어....."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대명침례교회에서 안수 집사 된 것을 뜻하신 것인지 아니면 성동교회에 가서 장로 된 줄로 오해하신 것인지는 모르겠다.)

 

" 목사님 건강해 보이십니다. 오늘 설교 말씀도 여전 하시고요."

" 응 그래?..."

 

나에게 오늘 행사에 오라고 전화를 했던 이기준 안수집사가 목사님들이 가시는 식당으로 같이 가자고 권유를 했지만 사양하고 아는 교인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나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아내 김 집사에게 " 오늘 김충기 목사님이 나를 안아 주셨다." 자랑을 했다.

" 당신은 좋았겠네..." 아내가 웃으며 내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김 집사에게 자랑했던 것이 또 하나 있었다.

오래전, 김 목사님께서 미국에 집회 가셨을 때 나에게 그림엽서를 보내 주셨던 적이 있었다.

집회 기간 바쁘신 중에도 내게 보내주신 그 엽서를 결혼 후에 아내에게 보여 주며 자랑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은근히 신이 나서 오늘처럼 자랑했었다.

 

김 목사님은 장로 교단의 아성인 대구에서 목회하시면서 인접해 있던 신암교회나 신광교회보다 교세가 빠지지 않게 목회하셨던 분이시다.

서울로 가시어서 강남 중앙교회를 개척하시고 지금은 침례교단 내에서 제일 큰 교회로 성장시킨 목사님이시기에, 또 한 시대를 이 땅에서 성령 운동으로 뜨겁게 역사하시던 부흥강사로서 전국적으로 집회를 다니신 분이셨기에 김 목사님을 좋아하며 존경하는 교인들이 대단히 많다.

그 시절 (성령의 은혜를 강조하던 때 )에는 신암교회와 신광교회의 뜨거운 성도들도 우리 교회(중앙침례교회)에 와서 저녁 예배에 참석하고 김 목사님을 통하여 은혜를 받곤 했다.

 

 

이처럼 김 목사님을 존경하는 교인들이 많이 있지만 나처럼 김 목사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사람도 없을 것 같기에 (나 혼자의 생각일는지 모르지만...)내가 김 목사님의 사랑을 받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군 입대 전 일이니까 20세 전후의 일로 생각된다.

그때 나는 토요일 저녁이면 교회에 가서 사택에서 집회에 다녀오신 목사님께 인사를 하고( 어떨 땐 저녁도 얻어먹는다) 주일을 보내고, 월요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비로소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평소 가정일과 직장 일을 빈틈없이 했음은 물론이다.)

잠은 기도실에서 기도하다가 잤다.

 

 

교회에 머무는 시간이 많음에 따라 나는 목사님과 만나는 시간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았고

목사님의 지시하시는 모든 말씀을 잘 따랐다.

교회 학교 총무로 오래 일을 했고, 청년회 회장직을 맡았을 때는 청년회를 통해 교회의 여러 일을 감당했으며 청년회원들을 믿음으로 이끌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청년 회원 중 누가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면 강단과 중앙통로를 꽃으로 장식해 주고, 제반 일들을 도와주고

 

혼주에게서 얻는 봉투를 전임회장들은 당일 썼지만 나는 그것을 모았다가 청년회실 내에 필요한 책상과 캐비닛이며, 책장 등 비품을 한가지씩 장만했다.

 

설날이면 연세 드신 집사님들 집을 청년회원들과 찾아다니며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았고, 그 돈 역시도 축호 전도 때 필요한 앰프와 마이크, 북을 사는 데 사용했다.

우리는 그 북과 마이크 장비를 가지고 시간이 날 때면 칠성시장으로 가서 북을 치고 찬송을 부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노방전도를 열심히 했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일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참 잘했다고 생각된다.

 

명절이면 잊지 않고 양말이든 마후라든 정성껏 준비해서 목사님과 목회자들에게 꼭꼭 인사를 드렸다.

이런 일들로 인해 나는 목사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보다 오래도록 목사님의 기억 속에 남는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다.

 

서울에 가셔서 수천 명의 교인이 있는 지금, 서울 가신지도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고 얼마 전엔 중풍으로 잠시 고생까지 하셨던 김 목사님께서 지금도 내 이름을 기억하시고 불러 주는 이 사실에 나는 여간 감사해 마지않는다.

 

나는 성동교회의 젊은이들이 대부분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담임 목회자로부터 남다른 사랑을 받고 먼 훗날도 이름이 기억이 되며 축복의 기도를 받는 대상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기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다.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담임 목회자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일은 그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성경에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가르치고 있다.

사랑하는 자의 영혼이 잘 되기를 바란단다.

사랑받는 자이면 축복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진리가 내포된 말씀이다.

 

정이 가는 사람에게 해주는 기도가 더 힘이 실리는 법이다.

목회자의 진심 어린 축복의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이 빠르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자.

 

무더운 여름철이 되었다.

수박 한 덩이라도 사서 목회자들을 찾아가 보자.

우리 속담에도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는 법이다'라는 말이 있다.

 

목회자에게 사랑받고 싶은 젊은이들이여

이제 얼마 있지 않아 미국에 가셨던 담임 목사님께서 오시게 된다.

우리의 영의 교사요, 아버지가 아니신가?

나들이 가신 아버지께서 돌아오실 때 앉아서 맞이하는가?

그는 주의 종이요, 나를 축복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계신 분이시지 않는가?

공항으로 환영 나가보자.

피켓은 들고 가지 못해도 따뜻한 미소로 모두 반갑게 맞아보자.

목사님이 깜짝 놀라시도록....

 


2000 년 7 월 18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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