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그들 찬양 내 안 받을란다

2008. 12. 14. 22:58칼럼

지난 730() 성주에 있는 동일 수련원에서 열리는 집회에 찬양하기 위해 갔던 일이다.

해마다 이맘때 열리는 동일교회 하기 집회에 우리 교회 할렐루야 찬양대가 집회 첫 날 찬양을 하게 된 것은 4-5년 전부터다.

 

날씨는 덥지만 산상 기도원에서 하룻저녁 집회에 참석하고 은혜를 받고 찬양도 드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인지 대원들의 참여도가 좋은 편이다.

나도 빠짐없이 몇 해를 대원으로 이 찬양행사에 참여해 왔다.

 

올해는 양 집사님이 한 달간 가족들과 함께 간 유럽 여행을 가는 바람에 내가 지휘를

맡게 되었다.

대원들과는 이미 어느 정도 연습이 되어있어서 7시에 수련원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는 회사에서 6시에 성 권사님과 현숙이 집사님, 아내를 태우고 나섰다.

 

가는 길에 배문호 청년을 태워 가기로 아내가 약속을 미리 했다고 해서 태우러 가는데

비가 와서 평소보다 차는 밀리고 시간은 자꾸 가고 해서 은근히 짜증이 났다.

처음에 아내가 서부 정류장 쪽이라고 했는데 배 문호 청년이 만나자고 한 위치는 도원동이었다.

 

고속도로로 가면 빠를 길을 국도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가는 바람에 20-30분 이상 지체가 되었다.

 

미끄러운 길을 달려 동일교회 수련원에 도착하니 730분이었다.

급히 연습실로 가보니 물난리가 났을 때 사람들이 학교 교실에 임시로 와서 임시 기거하는 모습을 TV에서 봤던 그 모습처럼 여 성도들이 자리를 펴고 많이 누워있고 대원들은 한 사람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식당에 가보니 그곳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예배시작 전 30분인데 반주자도 대원들도 모두 그곳에 있어서 나는 무어라 말은 못 하고 혼자 연습실로 다시 갔다.

 

연습실에서 잠시 기도를 한 뒤, 누워있는 사람들을 깨웠다.

< 지금 성가대 연습을 해야 하거든요. 집회 시작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어른들은 일어나 나가는데 뛰어다니며 놀던 애들 네댓 명은 말을 듣지 않고 여전히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장난을 하고 나가지 않았다.

 

오지 않는 대원들에 대한 미움, 아이들의 장난, 시간의 촉박함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룻저녁 안 먹는다고 어떻게 되나? 악착같이 찾아 먹겠다 이거지...>

 

대원들이 연습실에 어느 정도 모인 것은 740분쯤 이었다.

20분을 남겨 놓은 시간에 연습실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보니 한 번도 연습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4-5명 정도 있었다.

<연습도 하지 않고 이제 나타나서 어쩌겠다는 거야?.....>

시끄러운 주변, 어지럽게 널려진 이부자리들, 식사를 하고 늦거나 말거나 의기양양하게 와서 가운을 챙겨입는 모습들

 

평상심을 잃은 내 목소리는 경직되고 오늘의 찬양이 과연 제대로 될는지 불안스러웠다.

목을 풀기 위해서 발성 연습을 잠시 시켰다.

(이것은 내가 판단 잘못이었다. 발성 연습대신에 찬양을 두 번 더 불러 보았어야 했는데)

 

첫 송은 찬송가 188'빈손들고 앞에가 십자가를 붙드네'를 연습했었다.

'맘을 씻어 주소서'에서 '' 자를 너무 오래 끈다고 중간에 끊었다.

탁자를 두 번 치면서 눈을 내리깔고 잔소리를 했다.

대원들의 얼굴이 굳어지는 듯했다.

 

기도송은 '만군의 주 여호와', 축도 송은 '늘 축복하소서'를 딱 한 번씩 밖에 맞춰 보지 못했다. 시간이 없어서다.

찬양곡 '엘리야의 하나님'도 한 번밖에 부르지 못하고 본당에 올라갔다.

 

동일교회 새 노래 찬양대가 인도하는 찬양 몇 곡을 더 부른 후 예배가 시작되었다.

대원들이 바닥에 앉은 채로 첫 송을 하는데 제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소프라노 쪽에 앉아 있는 두 자매는 악보만 들여다보고 지휘를 보지 않고 있어서 신경이

거슬렸다.

지휘를 하다말고 그 자매들 쪽으로 다가가서 < 지휘자를 봐야지 안보고 어떻게 해?> 하는 투로 쳐다보며 인상을 썼다.

연습 때는 안보이던 학생들이었는데 믿음이가 불러서 온 자매들인 것 같았다.

 

기도가 끝나고 광고를 한 다음 우리가 찬양할 시간이었다.

수련원 쪽에서 임시로 마련해 놓은 지휘자 자리는 생수통을 뒤집어 놓고 그 위에다 보자기를 덮은

것이었다.

 

올라서니 너무 덩그러니 높았다.

대원들은 피아노 앞과 옆으로 섰다. 반주자가 나를 잘 볼 수 있도록 통로처럼 열라고

지시하고 제 자리에 섰다.

~ ㅇ 하는 에어컨 소리며 천장에 매달려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가 귀에 몹시 거슬렸다.

( 본교회에서 찬양을 할 때는 꼭 에어컨을 꺼달라고 부탁을 한다.)

 

'엘리야의 하나님'은 집회 때 가끔 찬양하던 곡이어서 악보를 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곡이다.

그래서 대원들을 쳐다보면서 지휘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간곡한 기도에 응답하소서>에서 ''4박을 빼야하는데 3박을 한 후 내가 그만 끊는 사인을 냈고 2박을 쉬어야 하는데 소프라노에서 1박을 쉬고 먼저 튀어나왔다.

반주자와 다른 대원들은 정박으로 하다보니 뒤엉키게 되었다.

 

얼버무리며 진행되다가 두 번째 엘리야의 하나님에서 비로소 한목소리가 되었다.

대원 중에서 웃고 있는 사람 얼굴이 보이고 내 입가에도 멋쩍은 미소가 번졌다.

 

<너거들 찬양 내 안 받을란다.>

하나님 음성이 내 속에서 또렷이 들리는 듯해서 전율을 느꼈다.

이 곡은 2박씩 쉬는 부분이 있어서 끊는 사인과 시작 사인을 절대로 필요로 하는

곡이어서 대원들에게는 지휘자를 보라고 해 놓고서 자신이 실수하다니....

 

찬양하고 자리에 앉아 눈은 강사 조돈제 목사님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머리에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는 곡이라고 암보를 하다가 박을 놓친 것이 실수였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이고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은 찬양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이나 우리 찬양대가 준비 기도가 부족했고, 지휘자로서 침착하지 못했다.

 

(사실, 그 시간 나는 대원들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하루 저녁 한끼 쯤 주를 위해 굶식도 할 수 있겠거늘 뭘 그렇게 주린 사람처럼 다 찾아 먹고 있느냐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일찍 와서 먹든지...)

 

얼굴이 굳어 있는 상태로 지휘대 위에 선다는 것은 하나님께 용납될 수 없는 찬양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여! 용서하소서. 못난 놈을 용서하소서.>

속으로 끊임없이 회개하며 애써 평정을 찾으려 해 보았지만, 머리는 맑아지지 않았다.

 

<내 탓이다. 내 탓이야. 이제는 젊은 사람들에게 물려주어야 해! >

내가 한 때 대원으로 참여했던 합창단 지휘자는 대원들의 소리가 마음에 안 들 때면 그 대원들 앞에 가까이 다가가서

머리를 깊이 숙이고 웃으며 절을 한다.

그러면 미안해서 정신을 집중해서 잘하려고 모두 애를 쓴다.

나 같으면 화를 냈을 게 뻔하다.

귀가 밝아져서 요구하는 수준은 높은데 대원들이 못 미칠 때 한두 번 지적하다가 자꾸 틀리게 하면 화가 나는데

그 지휘자는 언제나 천사표 스마일이다.

 

그 사람에 비하면 나는 리더로서 자격도 없고 도무지 부족한 사람이다.

대원들을 감싸 안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과 사랑의 자세부터 배워야 옳은 지휘자가 될 터인데

테크닉만 배워서 지휘하겠다니...

 

그 저녁에 나는 회개를 하며 앉아 있었다.

화를 품고서 부르는 찬양은 아무 데도 쓸데없는 찬양이다.

준비 없는 찬양은 순서 채우기지 찬양이 아니다.

찬양을 드리기 위해 연습하는 시간부터가 하나님께 합당해야 비로소 온전한 찬양이 된다.

 

<너거들 찬양은 내 안 받을란다> 하시는 음성과 함께 그 날밤 내게 주어진 다짐은 새로운 것이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듬는 마음으로 웃으며 찬양을 하자.

이번 돌아오는 주일 아침, 찬양 연습실에서 대원들을 만나면 얼굴 가득 미소를 짓자고 다짐해 본다.

 

<너거들 오늘 찬양 넘 좋았다 > 하시는 음성을 듣고 싶다.

 

 

2001, 8, 02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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