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한 지휘자입니다. (2)

2008. 12. 6. 22:06칼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따뜻한 손길로 인도해.. 두렴없고 실패없네..”

 

2006년 가을..

 

대학 4년을 마치고, 예정했던 유학을 가지 못하고, 아직 한국에 남아 있었다.

피아노와 지휘 사이에서 많은 갈등과 유학생활에 대한 불안,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가 시기를 놓친 것이다.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은 이미 독일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예고, 서울대 시절 나보다 성적이 좋지 못한 아이들도 미국의 좋은 학교에 진학했다거나 콩쿨에서 입상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급할 필요 없어, 난 군대 2년을 벌었으니까 괜찮아,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겠지.” 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아 보지만, 졸업 후 6개월이 지난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진로에 대한 두려움과 답답함이 커져만 갔다. 

 

매일 매일이 의미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연습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절부절 못하며 잠만 자고 있었다.

그 동안 막힘 없이 계속 승승장구하면서 예정되었던 대로 모든 일들을 해왔기에

처음으로 부딪힌 높은 벽에서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이 편했다. 7년이 넘은 서울에서의 자취 생활은 누군가가 나를 간섭하고 신경 써 주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게 했다. 부모님조차도.. 

매일 전화로 안부를 물으시는 부모님께서 가끔씩 진지하게 고민이 있냐고 물으실 때면 걱정 마시고, 신경 쓰시지 말라며 대화를 피해버렸다. 

 

가장 예민한, 그리고 인성 발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고등학교 시절을 서울에서 혼자 있으면서, 가족들과 대화하며 함께 기뻐하고 때로는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면서 공동체 속에서의 사회성을 학습했어야 했는데 그렇질 못한 것이다.

 

남의 이야기 듣는 것은 좋아했지만, 나의 어려움과 약점, 치부는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나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절대 하지 않았다.

언젠가 부터 외로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더더욱이 졸업 후 였기에 그나마 조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친구들이 유학을 가고, 몇몇은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정말 혼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신앙도 점점 퇴보하게 되었다. 대학 시절, 서울대 찬양 선교단이라는

동아리 속에서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훈련을 받으면서, 나 스스로를 이길 수 있는 신앙생활을 부족하게나마 할 수있었지만 졸업 후, 내 생활은 엉망 그 자체였다.

 

당시 출석하고 있었던 교회에서도 반주자로서 마치 직장에 나가는 것처럼 별 감동이

없었고, 말씀이 선포되어 지는 곳에 가는 것은 부담스러워져만 갔다.

24시간이라는 긴 시간동안 자유로움이 주어졌기에 아무런 제약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다.

자유로움은 곧 태만함이 되었고,태만한 가운데 점점 더 하나님과 멀어지면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 

세상은 믿는 사람들을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라더니 정말 나를 가만히 놔두질 않았다.

그 가운데 점점 더 약해져만가는 믿음.. 내가 하고 싶은대로의 ,멋대로의 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세상의 쾌락과 놀이는 재미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이 너무 무거웠다.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는 답답함이 있었다. 두려움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겉으로 웃고 있는 나를 향해 “아쉬울 게 없겠다.” 라며 부러워하고 칭찬도 했지만 내 마음 속의 답답함은 점점 더 깊어만 갔다.

그렇게 반 년이 지났다.

 

그러던 중, 양명석 장로님의 전화를 받았다. “소망군이 두 달간 지휘를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 장로님께서는 유학을 가기 전에 모교회에서 봉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할렐루야 찬양대 객원지휘를 권유하셨다. 매주 내려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고민도 많이 했지만, "너 찬양해..지휘해.. 그렇게 계속은 안돼.." 라는 맘 속 깊은 곳에서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 나에게는 새로운 신앙적 쇼크가 필요해..라는 생각이 들었고, 부모님께서도 좋아하시는 눈치여서 장로님께 지휘하겠다라고 말씀 드렸다. 그 순간 마음이 벅차올랐다. 무엇인가 새 발걸음을 내 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지휘한 첫 찬양은 양장로님께서 그 전 주에 연습시켜주신 “부흥”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왜 많은 곡들 중에 이 곡을 하게 하셨을까..장로님께서는 왜 이곡을 하라고 하셨을까..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그래.. 나에겐 정말 부흥이 필요하다. 차갑고 강퍅한 마음엔 부흥의 불길이 일어야 하고, 왜곡되어져 가는 내 생각과 가치관은 진리의 말씀으로 새로워져야 하며, 황무지와 같은 내 마음엔 은혜의 강물이 흘러야 한다. 잠들고 있는 내 영혼에는 성령의 바람이 필요하다.

회복이 필요했다. 이대로는 할렐루야 찬양대 지휘자로서, 아니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음악인으로 바로 설 수가 없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너무 감사했다. 그 날 찬양은 하나님을 향한 회복의 갈구함으로 드려졌다.  

그 다음 주, 두 번째 곡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곡이 었다. 평소 즐겨 부르던 곡이었다. 아침에 연습하면서 대원들에게 성남시립합창단의 CD를 들려주었다.

 

내가 존경하던 이상훈 선생님께서 지휘자로 계신 합창단이었다.

수준 높은 합창음악을 들려주고 싶어 CD를 틀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마구 쏟아져 대원들을 쳐다 볼 수 없었다

“그 손길로 인도하네.. 따스한 손길로 인도해..

언제든지, 어디서나 변치 않고 사랑해..

두렴 없고 실패 없네... 주의 사랑....”

 

그렇다. 실패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따스한 손길로 나를 감싸 안으셨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나를 녹여주셨다. 어디서든지 변치 않고 너를 사랑하시리라고 말씀해 주셨다. 벅차오르는 마음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 날 드려진 찬양은 나 뿐 아니라 여러 대원들이 눈물로 고백하는 귀한 찬양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러셨던 것 처럼, 다른 대원들에게 있는 말 못할 어려움과 고통을 그 따스한 손길로 만져주셨으리라. 

 

가족들과의 대화도 조금씩 시작되었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어머님께서 지어주신 밥을 먹고, 아버지와 함께 뉴스를 보면서 가족들과 부대끼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실패가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할렐루야 지휘자로 날 세워주셔서 찬양을 통해 날 회복해 가셨다. 앞으로의 내가 살아가야 할 음악 인생은 이렇게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져야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

  

그 두 달간 우리 할렐루야 찬양대는 나 때문에(?ㅋㅋ) 계속 친구되시고 위로자되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만 찬양했다.

 

“내 맘이 아플적에 큰 위로되시고 나 외로울 때 좋은 친구라..

 주는 저 산 밑의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위에 비길 것이 없어라..”

 

“모든 짐 주께 드려라.. 모든 근심 걱정들..

 주님 원하네 주께 드려라.. 근심 걱정 주님께 맡겨라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 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기도 드려 아뢰세.. 아멘..”

 

 

2008.04.09 제갈소망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넥타이  (0) 2008.12.10
나는 행복한 지휘자입니다.(3)  (0) 2008.12.06
나는 행복한 지휘자입니다. (1)  (0) 2008.12.06
반주자  (0) 2008.11.30
잃어버린 눈물찾기  (0) 2008.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