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12. 22:45ㆍ나의 시
겨울나무
제갈유태
겨울나무는 이름이 없다.
잎이 다 떨어지고 열매도 없으니
그냥
겨울나무라 부른다.
겨울나무는 지혜가 있다.
내려놓을 때와 보낼 때를 알고
그냥
다 떠나보내고 없다.
겨울나무는 마음을 비웠다.
위만 보고 키우던 욕망
그냥
다 내려놓고 빈손이다.
겨울나무에게 지금은
빈손 들고 기도를 드리는 시간
다만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겨울나무가 바라는 게 있다면
볼품없는 맨몸 흰 눈에 덮이는 거다.
오직
세마포 같은 흰 눈 입는 거다
겨울나무/제갈유태
언 땅에 선 나무
이파리 떨어지고
열매도 없어 이름을 모르네
내려놓을 때를 어떻게 알고
푸르던 욕망을
다 내려놓았을까
남은 건 빈손 들고
올리는 긴 침묵 기도뿐
이제는,
볼품없는 몸뚱이
덮어줄 흰 눈만 기다리나
나더러
겨울이 오기 전에
내려놓고 살라 하네
대구 공항에 갔다가 줄지어선 나무들을 보면서
겨울나무는 욕심이 없구나.
한때는 셀 수 없는 욕망의 이파리가 많았지만 지금은 다 내려놓았구나.
겨울나무는 하늘을 향해 팔을 들고 기도를 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겨울나무는 이름이 없다.
한때는 온갖 새들이 다가오기도 했겠지만 지금은 다 떠나고 없다.
겨울나무는 차가운 땅에 발을 딛고 하늘만 보는 중이다.
다 벗어버린 지금 새하얀 눈이 내린다면 그나마 위로가 되리라.
그나마 맨살 위에 세마포가 덮여지면 얼마나 좋으랴
내려놓음의 지혜를 지닌 겨울나무
침묵할 줄 알고
빈들에 서 있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이름 없이 하늘만 보고 서 있을 줄 아는 겨울나무
내려놓으면 겁날 것도 없다.
이제는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시간
욕망이란 이름으로 달린 이파리들 때문에 바람 앞에 얼마나 힘들었던가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며 조용히 이름조차 내려놓는 시간.
벌거벗은 맨 몸뚱이가 어느 날 아궁이 속에서 형체가 없어지더라도
연기되어 하늘로 오를 꿈은 남아 있을 겨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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