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

2008. 8. 30. 00:02칼럼

소망이 입시 문제로 아내가 서울로 간 지 이틀이 지났다.

아내가 없는 자리를 어머니께서 메꾸어 주시고 계신다.

 

어머니의 연세는 올해 일흔하나이시다.

몇 년 전 고혈압으로 인한 뇌동맥 경색으로 기억상실증이 처음 왔을 때 나는 무척 당황했고

아내와 아이들도 여간 걱정을 하지 않았다.

" 아빠, 할머니 왜 저래? " 소망이가 어머니를 피해 나에게 물었을 때 나는" , 할머니를

이제부터는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보호해야 돼..." 하고 일러 주었다.

 

금방 물어보셨던 것을 또 물어보시고, 어제 있었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시는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의사는 노인들에게 흔히 있는 증상이라고 하면서

처방으로 고혈압을 먼저 다스려야 된다고 가르쳐 주었다.

혈압이 높은 줄을 모르고 있었던 나는 자식이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였다는 점을 한동안

후회하며 지냈다.

 

꾸준히 혈압약을 드시면서 이제는 처음보다 증상이 많이 좋아지셨다.

종일 혼자 아파트를 지키고 계시는 어머니를 위해 퇴근 후 나는 옷을 벗자 말자 곧바로 거실로 나와 어머니 곁에 앉아서 신문을 읽곤 한다.

TV를 보고 계셨던 어머니는 내가 옆에 앉아서 신문을 보는 시간이 아마 제일 행복하실 것이다.

 

아내가 부엌에서 저녁상을 차릴 동안 나는 어머니와 같이 앉아서 TV도 보고 신문을 본다.

말없이 앉아 있어 주는 것으로도 온종일 적적하셨을 어머니에게는 큰 위안이 될 것이라

생각한 나의 배려인 셈이다.

언제나 씻는 것은 나중 차례로 밀려난다.

 

저녁을 먹을 때면 어머니는 " 야야, 고것 먹고 우에사노? 더 먹어라..." 하신다.

더 먹지 않을 줄을 뻔히 아시면서 하시는 말씀이다.

" 많이 먹었심더..." 경상도 사내의 퉁명스런 대답이지만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싶어 그러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짐짓 물 한 그릇 달라고 하기도 하고 때로는 과일을 깎아 먹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쟁반에다 과일을 손수 갖고 오셔서 깎아 주시고 나와 함께 저녁 시간을 즐기신다.

비록 한 두 시간 남짓이지만...

 

내가 방으로 들어가기까지의 시간이 어머니가 아들과 가까이 있는 유일한 시간인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오늘 아침, 어제에 이어 어머님과 둘이서 아침 예배를 드리면서

그동안 아내의 큰 목소리 때문에 잘 듣지 못했던 어머니의 소리를 들었다.

약간 힘이 없을 뿐 음정도 정확하고 아직 소리도 잘 내시는 편이어서 나는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예배 시간 때 성경을 다섯 절씩 차례로 읽는데 어머니는 느리게 읽으시지만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순서를 감당해 내신다.

 

기도하라고 권하면 " 내 차례가?... " 하시며 기분이 좋아지셔서 있는 대로 자식들에게

축복하신다.

오늘 저녁에는 혼자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믿음이는 외출 중이고 어머니 혼자 계셨다.

어머니가 저녁상을 차려 내 오시고 두 모자가 거실 TV 앞에서 저녁을 먹었다.

어머니의 솜씨는 아직 나무랄 데가 없다.

음식의 간도 내가 먹기에 적당하고 데울 것은 데워서 차려 내오신다.

어제저녁 시켜 먹고 조금 남았던 아귀찜을 버리지 않으셨다가 다시 먹을 수 있도록 만드셔서 갖고 오셨다.

 

둘이서 먹는 저녁을 몇 번이나 더 먹을 수 있을까?

식사 후 감을 깎아 먹자고 주문했더니 쟁반에 곱게 깎아서 내오셨다.

" 믿음이 엄마 언제 오노?"

" 내일 옵니다."

" 어제 갔나?... "

" 아니, 아래 갔습니다.."

" 아래? ... 어제 안 갔나? ... 소망이는 시험에 합격 했다카디..."

" 그건 1차 시험이고 어제 2차 쳤고, 내일이 면접이랍니더..."

알아들으시든 않든 나는 길게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교회에 가서도 제 1여 전도회실(나이 많은 노인들이 잠시 쉴 수 있는 방)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계시고 말씀을 잘 안 하시기 때문에 착한 할머니로 통한다.

당신이 손해를 볼지언정 남에게는 절대 해를 끼치지 않으시면서 평생을 살아오셨다.

 

나이 열여섯에 시집오셔서 가난한 살림을 꾸려오시면서 고생도 많이 하셨다.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를 하실 때 단칸 셋방에서 세 식구가 사셨으며

할머니께서 중풍으로 고생을 하실 때는 대소변을 다 받아 내시면서 고생을 하셨지만 원망하지 않고 사셨던 분이시라고 들었다.

채소 장사를 하시느라 먼 길을 채소를 이고 칠성시장까지 다니셨던 어머니.

고생하신 것을 보상해 주려면 한이 없다.

 

아직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둘째 아들과 신앙이 튼튼하지 못한 큰딸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겠지만 큰딸이 사다 주는 옷을 입고 교회로 가시는 즐거움을 큰 낙으로 삼고 계시는 분이다.

 

천성이 워낙 어지셔서 아내와는 딱 한 번 부딪히고 25년을 사는 동안 다툼이 없으시다.

 

다니던 교회를 옮겨 성동교회로 처음 왔을 때 친구가 없어 처음에는 " 나는 대명교회(전에 다니던 교회)로 가면 안되나? " 하셨을 때는 마음이 아팠는데, 이제는 교회에 적응을 잘하시고 같은 또래의 권사님들과 잘 어울리고 계시기에 내 마음 편하다.

 

아침 가정예배 기도순서가 되면 빼지 않고 믿음이, 소망이의 장래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어머니시지만 아이들은 어머니의 존재 의미를 나만큼은 모르는 것 같아 많이 아쉽다.

이제 사셔야 얼마나 사실까?

5년이 될지 8년이 될지 모를 남은 생을 퇴근 후의 시간만 어머님께 드리는 내 삶을 보노라면 사람이 산다는 게 결국 이런 것인가 싶은 마음이 들어 괜히 찡해 온다.

 

젊을 때는 사업한답시고 바빠서 어머니를 생각하지 못했다가 나이가 들어 어머니를

의식하는 지금은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고 또 이렇게 바쁘게 살고 있다.

 

그러는 사이 어머니의 머리는 새하얗게 되었고 기억력은 쇠퇴해졌다.

몇 년 전에는 신약 성경 전체를 볼펜으로 노트에 곱게 써서 교회에 제출하여 젊은 나도 못 한 큰일을 하시더니 이제는 " 읽어도 머리에 안 들어온다..." 하시며 성경 읽기를 포기하시고 앞 베란다 창가에서 흘러가는 신천의 물 구경과 다리 위를 지나다니는 자동차 구경으로 소일하시는 나의 어머니.

 

밤이면 몰려든 가족들과 더 계시고 싶어 방으로 들어가시기 서운하신지 "들어가 주무십시오" 할 때까지 거실에서 머뭇거리시는 나의 어머니.

 

2001. 10. 11 글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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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민 목사님이 주신 글 01-10-12
집사님! 역시 좋으신 어머님의 신앙을 그대로 이어 받으셨군요. 연로하시지만, 살아 계신 어머님이 그립습니다. 저는 8년 전에 72세의 연세로 본향으로 가신 어머님이 늘상 그립습니다. "지금 계셨더면..."이란 생각을 항상 할 때마다 마음이 미어집니다. 다시 한번 어머님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신 집사님께 감사를 드리며, 귀하신 어머님이 주님께서 오라고 하시는 날까지 건강하게 자녀들을 축복하실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김재광 집사님께서 주신 글 01-10-12
제갈유태집사님,김진구집사님 참으로 효도하십니다. 저에게는 가슴에와닿는 아름다운글입니다. 저의어머니는 82세이지만 아직은건강하시지만 기우는해가 오래토록빛을잃고 떠있을수는없겠지요! 자녀들도 훌륭하고 가정이 행복하게 느껴집니다.늘축복받는 가정되시기를 바랍니다.샬롬 !

이창숙 집사님께서 주신 글 01-10-13
아내의 곁에서 신문보는 남편의 모습도 보기가 어려운 시절인데..... 어머니의 곁에 신문을 읽는 아들의 모습은 더욱 아름답게 그려지는것은 왜일까요?? 정말 행복을 느낄수있는 모습입니다.


서문목 집사님께서 주신 글 01-10-13
참으로 아름다운 글에 가슴이 벅찹니다.
월요일 크리스챤코랄 연주회때 잠시뵙고 교육갔다가 이제 출근했습니다.
저의 어머니도 평생을 청각장애로 사시는데 집사님께 남다른 동정이 느껴
집니다. 집사님은 좋으신 어머니,김진구집사님 그리고 훌륭한 자제분들과
좋은 가정을 이루셔서 참 닮고 싶은 가정이라 생각됩니다. 서문목.


강문숙 집사님께서 주신 글
10/12 우리 모두의 어머니...
집사님!
글 읽고 마음이 따뜻해져 옴을 느낍니다.
어머님과 아드님의 품성이 닮으셨을 것 같기도 하구요.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그러하셨을 것을...

집사님의 글 엮어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음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차분하고도 자연스럽게 표현하셔서 읽는 사람들마저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듯 합니다.

이 가을엔 그렇게 따뜻한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가 정말 필요할 때 입니다.
눈 뜨면 한 나라를 풍비박산 내는 일만 화면으로 보이니...
마음이 삭막하여지고 자꾸 정처없어질려고 했는데,
집사님의 글 잘 읽고 갑니다.

주님 은총이 넘치시길...

 

 

( 2008, 08 , 29  현재 어머니는 건강하신 편이며 고혈압 외에는 특별히 편찮으신 데가 없고 증손자

  평강이까지 보시고 4대가 한 집에서 사시는 복을 누리신다.)

 

 

손자 소망이와 고기집에서...2008.08.29

 

 

 

수성4가 e편한세상에 살 때

 

 

교회 집회시 손들고 찬양하시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