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실세 이야기

2008. 8. 30. 00:15칼럼

우리 집 실세(實勢)이야기

지난여름,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뜰 때쯤 해서 찬송 소리가 집안에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밤잠을 설치다 새벽녘에야 단잠을 자는데 아내와 어머니의 찬송 소리에 잠을 깨게 되었던 것입니다.

찬송 소리는 어머니 방에서 들렸습니다.

 

혼자 이리 뒤척 저리 뒤 착하며 다시 잠을 청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며칠 하다 말겠지 싶어서 모르는 채하고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고부끼리 드리는 아침 예배는 계속되는 것이었습니다.

찬송 소리에 잠이 깨게 되는 나는 예배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에도 가정예배를 몇 번 시작해 보았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았고 아내의 협조가 없이는 잘되지 않았습니다.

집안일이 많은 아내가 예배드릴 시간이 없다고 하면 달리 재간이 없었습니다.

물론 두 사람이라도 드리면 되었겠지만....

 

그래서 중단되었던 가정예배를 아내가 다시 시작했고 이렇게 시작된 예배는 이제 꽤 오래 지속되고 있습니다.

아침 7, 아내가 하던 일을 멈추고 예배를 드리자고 하면 어머니와 내가 성경 찬송을 들고 거실에 앉으면 되니까요.

그러고 보면 아내는 우리 집에서 힘이 제일 센 셈입니다.

아내의 시간에 의해 좌우되니까 말입니다.

 

 

어느 집이나 비슷하겠지만,

아내는 우리 집의 모든 살림살이며 돈의 쓰임새를 좌지우지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항상 나의 월급봉투는 아내의 손에 들어가서 필요에 따라서 가족들을 위해 쓰이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무슨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나에게 의논하기 전에 아내에게 먼저 의논하고 돈을 타서 씁니다.

 

아내가 우리 집 실세라는 증거는 몇 군데 더 있습니다.

집안의 가구며 세간의 위치를 아내가 한번 바꾸어 보자고 하면 그것을 말릴 수가 없습니다.

있는 가구를 바꾸어 보자고 하는데 거절할 수도 없어서 온 식구들이 동원되어

가구 위치 바꾸는 소동을 벌이게 됩니다.

 

주일 날 아침만 해도 그렇습니다.

아내가 엘 리 베이트를 내려오지 않으면 나는 입구에 대어 놓은 차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빨리 가자고 독촉을 아무리 하여도 아내는 늘 늦습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더라도 아내의 시간에 맞추어 살게 됩니다.

 

소망이가 피아노를 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아내는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소망이의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레슨 선생님을 찾고, 만나는 일들은 다 아내가 했습니다.

그래서 소망이는 선생님과 무슨 일이 있으면 아내와 의논을 합니다.

아내가 송금을 얼마 하라고 하면 내가 송금을 합니다.

이럴 때 아내의 말은 거역할 수 없는 힘을 지니게 됩니다.

 

아내의 실세 파워가 발휘되는 것 중 하나는 아이들에게 적당한 잔소리를 할 때입니다.

아이들은 아내가 하는 말을 잘 듣는 편입니다.

요즘 아내는 고생하면서도 신이 납니다.

적어도 아내는 지금 우리 집에서 최고의 힘을 행사하는 중이니까요.

언젠가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면 아내는 허전해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돈을 쓸 필요가 없을 때면 아내의 힘도 약해질 것이 뻔합니다.

그러면 실세도 한 철이 되는 셈이지요.

철이 가기 전에 아내가 마음껏 세를 과시하도록 나는 잠자코 있습니다.

 

통상 실세 뒤에 든든한 백이 있는 것처럼 나는 아내를 힘있게 해주는 그 백으로만 자위하면서

오늘도 아내의 실력행사를 옆에서 지켜 보고 있습니다.

 

2001.09.09 글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