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20. 22:54ㆍ칼럼
어제저녁은 어머니와 함께 오랜만에 동성로에 나가 봤다.
아내가 소망이 집에 다니러 갔기 때문에 집엔 어머니 혼자 계시고 저녁도 해 놓지 않았을 것 같아서 어머니와 외식할
생각에서였다.
연세가 드시면서 어머니는 집안일이 손에 뜨는 편이고 저녁을 준비하는 것도 귀찮아지셨는지 외식을 하자고 하면 내심 좋아하시는 편이다.
외출 준비를 하고 나서는 어머니는 흰머리 위에 모자를 눌러쓰고 나오셨다.
택시를 타고 한일극장 앞에서 내리니 기본 요금이 나왔다.
지하도를 건너 맞은편 쪽으로 나와 교보(문고)빌딩을 찾아 회전식 출입문 안으로 어머니를 앞세우고 조심스레 들어섰다.
2층으로 올라와서 찾으라는 아가씨의 말을 기억하고 에스컬레이터로 2층에 올라서니
어마어마하게 큰 서점 안에는 책을 찾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독서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감탄을 하면서....
학생들인지 일반인들인지 모르지만, 책장 앞에서 책을 뒤적이는 사람들....
바닥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는 아이들....
많은 사람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화로 주문해 놓은 강문숙 시인의<탁자 위의 사막> 시집을 종업원으로부터 받아 들고 돌아서서 내려가자고 하니 어머니가 " 야야, 돈은 안 주나?..." 하신다.
" 돈은 아래층에서 계산하면 예."
밖으로 나온 우리는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두리번거렸다.
젊은이들만 오가는 거리에서 우리 모자가 두리번거리며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유심히 봤다면 촌사람 서울 나들이 꼴일 게 분명해 은근히 속웃음이 나왔다.
부산안면옥 냉면 생각이 나서 냉면을 드시겠느냐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춥다고 싫다 하셨다.
요즘, 어머니는 걷는 것도 싫어하신다.
아파트에 종일 계시는 어머니는 몸무게가 전보다 느셨다.
가까이 있는 분식집으로 들어가서 비빔밥과 군만두를 시켜 놓고 밖을 보노라니 젊은이들이 많이 지나다녔다.
역시 동성로는 젊은이들의 거리였다.
1,000 원짜리 액세서리 리어카 주인 남자가 의자 위에 올라서서 무조건 1,000원이라고 적힌 판을 흔들며
고함을 지르고 동성로는 활기가 넘쳤다.
몇십 년 전에도 저런 장사들이 있었지....
그러고 보니 동성로에 나온지 얼마 만인가.
한일 극장 자리에 엑손밀라노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 세월이 흘러갔구나. ---
가면 되돌아오지 않는 세월, 참 빠른 게 세월이다.
작년까지 우리 구역의 구역장이었던 옥필귀 권사님이 얼마 전 새벽기도 나오려고 방에서 일어서다 넘어져
대퇴부 뼈를 다쳐 뼈 접합 대수술을 받고는 요즘 엄청나게 고생하고 있고 ,
장영수 집사님 어머니 송순현 집사님이 어제 19년의 병상 생활을 마감하고 하나님 나라로 가셨다.
그래서,
어머니와 시내에서 저녁이라도 먹어야겠다 생각했던 거였다.
어머니, 이제 일흔넷이다.
2004.5.3 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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