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권사의 사업과 신앙

2008. 11. 12. 18:47칼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P 회사의 신상품 설명회가 있어서 서울 출장을 나섰다.
회의는 오후 4 시지만 올라간 김에 몇 가지 다른 볼 일도 보려고 이른 새마을호를 탔다.
동대구 역에서 7시11분에 출발하는 기차 안 풍경은 늘 그렇듯이 대부분 의자를 뒤로 젖힌 채로 잠자기 대회를 하는 양 조용하기만 했다.
자리를 찾아가니 창 쪽을 비워두고 젊은이가 옆 좌석에 앉아 있었다.
천장에 붙은 개인 라이트를 켜고 가방에 넣어 간 시집을 꺼내어 읽으며 오는 잠을 쫓아보다가 기어이 잠에 져서 잠자기 대회에 끼어 들었다.

수원역임을 알리는 방송 소리에 깨어 일어나서,

얼마 전 딸을 시집 보낸 J에게 그 때 못 가서 미안스러워 점심이나 할 요량으로 전화를 했다.
사업에 실패를 하고 지금은 아무 일도 안하고 있는 친구다.

" J서방, 전화 왔다. 어이~, 전화 받아라. J서방...." 몇 번이나 J 를 부르며 깨우는 소리가 전화 속에서 들렸다.
" 나, 제갈유탭니다. 지난번엔 혼사에 못 가서 미안합니다. 나 지금 서울 올라가는 중인데
낮에 점심이라도 함께 할까해서..."
" 어, 그래요... 그러지 뭐...어디서 만날까? "
" 오늘 출장길이 롯데 호텔인데 4시에 회의가 있거든 거기서 만나는 게 어떨까?"
" 그래요, 그리로 가께..."

개찰구를 빠져 나와서 택시를 타고 원효로에 있는 H사로 가서 새로 온 영업실무자와 첫 인사를 나누고 상담에 들어가 L 대구점 OPEN 때 넣지 못한 A 냉장고를 입점시키는 문제를 협의하고 급히 나와 맞은 편 전자상가를 잠깐 둘러보는 일도 잊지 않았다.
요즘 붐이 일고 있는 홈시어터의 신제품 동향이며 진열 형태와 스피커 디자인 추세를 살펴보는 일도 이번 출장 목적  가운데 하나이기도 해서 둘러 보았다.

L 호텔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는 30 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호텔 로비에 앉아서 휴대폰으로 대구와 서울의 거래업체 몇 군데 전화를 걸며 업무를 보면서 한 10분이 더 지났는데도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가까운 곳에서 사업을 하는 J의 부인 L 권사에게 전화를 했다.

 

내 목소리를 금방 알아들은 L 권사의 밝은 음성이 또렷이 들려왔다.
다행히 자리에 있구나---. 내심 반가웠다.

" 서울 오셨어요? 어디에요? "
" 롯데 호텔 로비.... J집사하고 점심을 같이 하기로 했는데 안 오네, 한 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 저런! 어쩌나? J집사가 깜빡한 모양이네. 어쩌죠? ?... 내가 연락이 되면 전화를 하라고
할게요.... 아니, 이 쪽으로 오세요." L 권사가 미안해하며 가게로 오라고 했다.

" 어서 와요, 저 쪽으로 앉으세요..."
남자 두 사람과 상담 테이블에 앉아 있던 L 권사는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아 주었다.

두 사람과 나누는 대화의 L 권사 목소리는 여전히 쾌활하고 밝았다.

서울에 온지 25년, 여자의 힘으로 시작한 사업이 이제 동종 업계에서는 경쟁자가 없을 만큼 성공한 L 권사를 보노라면 여자의 힘을 절대 얕볼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가게 기둥에 성구 액자가 걸려 있다.

 

서울로 온 이들 부부의 사정에 대해서는 나 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J와 L  권사의 결혼 전후의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나를 L 권사는

언젠가 나를 오빠처럼 여긴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남자들이 가고 L 권사가 내 앞에 앉았다.
" 거래 은행 지점장... 언제 올라 왔어요? 그래..."
"  ** 결혼식 때 못 올라와서 미안합니다..."
" 무슨...바쁜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얼른 내 말을 가로막는다.
예전의 곱던 얼굴이 세월이 흐르면서 이젠 화장 밑으로 나이테가 보이는 것 같다.
기미도 좀 보이고...
"그래, ** 이는 잘 살고?..."
" 응, 잘 살아요... 믿는 집안인데, 사위가 신앙이 좋아서 ..어른들도 신앙이 좋고."
" **이는 살림만 사는 모양이지? 방송 활동이라든지...는 안하고?..."
" 그럼!"

L 권사는 뜻 있는 몇 사람과 힘을 모아서 교회를 개척했는데 8억이나 되는 거금을 거래 은행에서 자신의 명의로 차입을 해서 3층 건물 중 2층과 3층을

분양 받아 예쁜교회 하나를 개척했다고 했다.
속으로, ' 여자가 간도 크지...'  싶었다.

하나님 일 하다가 가는 게 우리의 할 일 아니겠느냐며 나를 바로 쳐다보며 자신에 찬 소리로 말을 이어가는 L 권사, 오래 전부터 S*M의 후원자로서

활동하는 그녀의 활동과 믿음을 아는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나 스스로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10 여 년 전, L  권사는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서 일시 투옥되는 쓰라린 과거를 갖고 있다.

감옥에 있을 때 , 면회 오는 사람들이 없을 만큼 그녀는 외로운 여자였다.

감옥에서 오로지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던 중 성령을 체험했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

출소 후, 그녀는 사업을 계속했고 재소자 선교회를 만들어 열심히 재소자들 선교를 한 적이 있다.
점차 선교 사업을 확대해 가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L 권사는 하나님 앞으로 점점 더 다가갔고...
하나님께서는 L 권사를 위하여 일을 하시기 시작했다.
캐나다로 유학 보냈던 자녀 중 딸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출전하여 미스코리아 진 이라는 영예의
금관을 쓸 때 나는 TV를 통해 그 광경을 보면서 함께 기뻐했었다.


J집사와의 결혼 생활은 약간의 성격 차이로 갈등도 있었지만  믿음으로 살더니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서울의 부자 동네에서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며 굳건하게 사는 L 권사가 늘 대단해 보였다.

 

사위가 기사를 붙여서 고급 외제차 하나를 자신에게 줄려고 했지만 사양했다는 말과

이제 그런 것 따위는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덧붙이는 그녀의 말은 무척이나 감동적이었다.

사업보다 오직 선교와 전도를 위해 열정을 쏟아내는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존경스럽고 아름답게 보이던지...

오늘도 L 권사는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값있는 서울 출장이었다.

 

2003.03.27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