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기도 죽을 쑨들 어떠리...

2008. 11. 29. 23:30칼럼


지난 주일은 무척 행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장로가 되고서 처음 대표기도를 윗 강단에 올라가서 하게 되어 목사님과
함께 강단에 올라갔지요.
집사 땐 오후 예배시간에 아래 강대에서 기도를 했었는데 장로가 되니까 윗 강단에서 대 예배때 기도하게 된 게 집사와 장로의 차이점이더군요.

한 주간을 기도문을 써서 몇 번이나
보면서 교인들을 위해 무슨 기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연구도 했고 많이 생각 하면서 지내었던 터라 기도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아서
조금도 낯설어 하지 않으며 강단에 올라갔지요.

선배 장로님들 중에는 기도문을 써서 기도시간에 읽는 분들이 더러 계셔서 속으로
'장로가 돼 가지고 기도도 하나 제대로 못해서 읽고 있나? 평소에 기도를 좀 하지...' 하고 약간 못 마땅하게 생각해 왔던 것도 사실이지요.

나는 기도문을 읽지 않으리라.
내 사전엔 기도문 원고 들고 올라가는 거 없다- 고 방향을 잡고 한 주간을 외웠으니 자신만만했지요.
매주 드리는 성가대 찬양도 외워서 하는데 몇 십 년 해 온 그까짓 기도를 못하랴 싶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래 강단과 위 강단의 차이는 긴장과 떨림의 정도가 크게 차이가 났지요.
기도를 중간쯤 하는 데 생각도 안 했던 기도가 되면서 외웠던 기도 내용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나는 기도 줄거리를 못 찾고 흔들리기 시작했지요.
한 주간 들여다보았던 원고와 전연 다른 기도가 나오는데 정신이 없었고 얼마나 당황했는지, 목이 잠기고 기침도 나오는 거 있지요.

순간 내 마음에는 번개같이 < 오늘 네 기도는 안 받을란다. 원고를 보고하는 것이나 미리 써 놓은 원고를 외워서 하는 기도나 마찬가지 아니냐?
나는 중심을 보는 신이 아니냐? 내게 하는 기도냐? 아니면 교인들 들으라고 하는 기도냐? 내가 원하는 기도는 평소에 하던 그런 기도가 아니냐? > 하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얼른 마무리를 하고 끝내야 되겠다 싶은데 제대로 안되는 거 있지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를 해야지 성도들 앞에 들려주기 위해 준비하는 기도와
성도들의 입맛에 맞는 내용을 넣는 기도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형식일 뿐,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가 아니라는 깨달음이 내게 밀물처럼 다가왔습니다.

평소에 교회와 교인들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대표기도를 할 때에는
그 연장선상에서 기도해야 된다는 깨달음도 새삼스레 몰려왔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장로석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었지만 내 마음은 한없이 침울했습니다.
보란듯이 기도를 하리라든 나를 하나님은 코를 무참히 짓밟으셨기 때문입니다.

자만한 날 깎아내리시려 기침을 동원하셨나?
원고에 없던 방향으로 기도를 몰고 가신이유는 무엇인가?
창밖에 후드득 후드득 빗소리가 굵게 들리는데 내 얼굴은 어두워진 채 펴지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기도하지 않던 거 제 잘못입니다. 이 모양, 이 게 제 모습입니다.
천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 기도하겠습니다.
마음을 편케 해 주십시오.
다만, 하나님께서 저를 무지 사랑하고 계시는 거 하나만큼은 변함이 없는 거 같네요.
그렇지요?
하나님, 저 사랑하시는 거 맞지요?
사랑하시는 거 맞지요? ^^*
다른 사람보다 날 더 사랑하시는 거 맞지요? 그렇지요?"
그렇게 속으로 기도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오후엔, 점촌 시민교회로 순회 찬양을 가기 위해 전세버스를 타고 부부합창단원들과 함께 비오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생각에 잠겨 차창 밖을 응시하는데

옆에 앉은 아내가 " 아까 기도, 원고 보고 했어?..." 하고 물었습니다.

"아~니...난 무어라 기도를 했는지 모르겠네. 기침도 나고... 위에 올라가니 영 딴 판이데, 떨리던데..... "
" 괜찮던데....나는 원고를 보고하나 했지..."
강냉이를 입에다 넣으며 아내도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창에 비치는 나의 빙긋이 웃는 얼굴, 하나님과 속삭이며 행복해 하는 내 마음은 못 보는 것 같았습니다.

날 사랑하시지요? 거듭 되묻는 내게
<제갈유태, 정신차리고 똑바로 잘해! 장로가 돼 가지고... 알았제? 평소에 기도 좀 하고.....>
창밖에서 하나님께서도 빙긋이 웃는 것 같았습니다.
첫 번 기도는 그렇게 죽을 쑤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한 하루였기에 너무 행복한 거 있지요...

 

끝으로

나, 이제부터 기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걱정입니다.^^*

2003, 07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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