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2008. 11. 29. 23:33칼럼

이번에 매미가 지나갈 때 일입니다.
교회 사무원한테서 당회원긴급소집이란 전갈이 와서 쫓아 가 봤더니 태풍매미가 날아가면서 교회 지붕일부를 걷어 찼는지 본당 천장이 휑하니 뚫려 있었고 그랜드피아노에도 빗물이
흥건하게 떨어졌고 천장에 높이 매달아 놓았던 프로젝트도 물세례를 받아 수리를 해야할
지경이 되었고 천장은 하늘이 반이나 보이는 기가 막힌 사태가 벌어져 있었습니다.

창문이 깨지면서 바람이 세차게 밀고 들어가 교회 지붕 패널이 견디지 못하고 뒷집 지붕
위로 떨어져 이웃집에도 피해를 입혔습니다.

당회원들 소집이유는 이럴 때 아예 리모델링을 하느냐 우선 수리를 해서 사용하다가
다음에 하느냐하는 것을 의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장로들이 거의 다 급하게 모여 의논을 한 끝에 우선 수리를 하기로 결정을 하였고
수리를 하여 사건은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긴급한 상황이 발발했을 때 장로들이 모여 상황을 빨리 해결하는 것은 어쩌면
대단히 효율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여름에 있었던 일 하나는 영 마음이 개운치 않고 지금도 P 목사님을 볼 때면
죄송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P 부목사님의 그 때 오후 예배 설교가 다소 과하다 싶을 만큼 급진적이긴 했으나 설교
전체 내용을 보면 넘길만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장로들이 이의를 제기했던 것입니다.
선배 장로들 시각에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사안이라 해서 자기네들끼리 이슈화했고 임시
당회를 소집해서 이 문제를 토의한 끝에 P 부목사님의 설교할 기회를 박탈해 달라는
몇몇 장로의 끈질긴 요청에 의해 P 부목사님은 아직도 강대상에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일이 있습니다.
갓 안수를 받은 햇병아리 장로입장이었지만 일의 부당함을 발언하여 몇몇 젊은 장로들의
동의까지 얻었으나 " 제갈장로님은 당회의 분위기를 좀 파악하고 발언하십시오...." 하는
선배 장로의 책망만 들었습니다.
장로가 목사의 설교를 간섭할 수 있는 그렇게 힘이 센 직책인지 처음 알았던 사건이었습니다.

전에 내가 출석하던 교회에 한 장로가 있었습니다.
제직회 때마다 목사님을 걸고 넘어져서 상당수 교인들이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실 나 역시도 K장로 때문에 그 교회를 떠나 왔습니다.

양들을 흩어버리는 K장로가 그 교회에 붙어 있는 한 부흥은 어려울 것이란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교회 사모님이 내가 가끔씩 드나드는 칼럼의 칼럼지기라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목사님의 속을 태울까, 사모님은 또 얼마나 고된 시집살이를 하고 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오늘 우리교회에서는 부목사님 청빙을 의논하는 임시 당회가 있었습니다.
깊숙한 쇼파에 뒤로 느긋하게 앉아서 청빙하기로 결정한 부목사님을 향해 이것저것 물으며 저울질하는 선배장로들의 질문에 허리를 바로 세우고 조심스레 대답하던 그 목사님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기가 센 장로가 되지 말고 더욱 겸손하게 낮아지는 장로가 되자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장로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는 이상한 구호가 머리에서 자꾸만 멤도는 밤입니다.

 

2003, 0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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