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과 개혁의 간판을 내리고 ...

2008. 12. 14. 22:40믿음이, 영아

오늘 저녁에 교회 휴게실에서 작은 모임을 가지면서 그 자리에 모인 몇몇 청년요셉 지체들의 모습을 보았다. 함께 이야기 하러 모인 자리였는데, 여러 지체들의 표정이 밝고 활기차다는 느낌보다는 다들 무언가에 지쳐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들 시험과 학업으로, 진로의 걱정으로, 직장 일에, 가정의 일로, 여러 가지 일로 바쁘게 사느라 지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모인 자리도 그리 즐거운 마음으로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자리였기에 그 자리에 참석한 지체들이 참 애처로워 보였다. 특히 10월 들어서면서부터 모두들 그리 여유로운 모습을 발견하기가 참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너무도 많은 내외적 사역들에 지친 탓이리라.

‘ 우리가 왜 이렇게 지치지. ’ 하는 생각과 함께 ‘왜 오늘 이 사람들이 이렇게 여기에 모였나...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소위 한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이야기 한답시고 쉬어야 하는 사람들을 괜히 불러서 고생만 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 그냥 맘 편히 좀 여유 가지고 그렇게 편안히 살아도 되는 것을 괜한 일을 한 건가 ...’ 걱정이 앞섰다.

나의 독단적 시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사람들을 모음으로써 그들에게 또다른 짐을 지워준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 것이다.

사실 때때로 나 스스로가 너무 교회 내의 개혁에만 몰두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불편하거나 불합리하다는 점이 보이면 누가 뭐랄 것도 없이 가장 먼저 나서서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때로는 입으로 비판의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이미 비판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적도 많다. 비판의 대상, 개혁의 대상이 되는 것은 청년요셉은 물론이거니와 교회적인 제반 상황들이 포함된다.

그동안 나는 청년요셉 아니 대학부 사역에 동참하고 배우고 나누고 함께 섬기면서 만 5년을 지내왔다. 5년 동안 얌전히 성경공부만하고 신앙생활을 착실히 한 것만은 아니다. 그 5년 동안 알아서는 안 될 것도 많이 알았고 몰라도 될 것까지 너무 많이 알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면서 머리가 굵어진 것인가... 교회에 산적한 여러 가지 허점과 약점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스스로 비판의 잣대로 그것들을 판단하기 시작하였고 나 스스로 그것들을 개혁해 보겠노라고 부단히 노력해 온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내 주위의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고 -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 그러면서 나의 비판적인 관점도 주위에 하나둘 전염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오늘 신앙의 대선배격이 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또다시 나의 비판의 잣대로 공동체를 판단하고 대안을 제시한답시고 내 나름대로의 철학을 앞세워서 이야기 하였다. 내 이야기가 옳든 틀리든 분명 그분은 조금은 불편한 마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으셨을 것이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도 그리 편안한 마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비판의 목소리는 처음 듣기에 거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쨌든 거북함과 불편함을 주는 소리임에는 틀림없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모두가 나의 의견에 손을 들어 옳다고 찬성한다 하여도, 그래서 힘이 난다 할지라도 비판의 시각이 관용과 이해의 시각보다 우선하는 나의 자세는 옳은 것 같지 않다. 거룩한(?) 비판의 잣대로 개혁의 주체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앞선 것일까, 아니면 나의 급하고 강박적인 성격과 체질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극도의 위기적 상황 때문일까.

나는 이제 더 이상의 비판과 개혁에 지친 것 같다.
비판의 시각을 가진다는 자체가 거부감이 생긴다.
언제 또다시 이런 마음이 돌이켜져서 다시 개혁적인(?) 자세로 되돌아 갈지 모르지만, 어쨌든 오늘 저녁 그렇게 비판의 목소리를 올리고 난 이후의 나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다.

스스로가 참 애처롭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의 나의 모습을 돌아볼 때 더욱 싫다.
청년요셉? 늘푸른찬양단? 교회구조? 시스템? 사람? 사역? 예배? 임원? 팀장? 지체?
리더라는 이름을 앞세우고, 선배라는 입장을 내세우며 얼마나 많은 일들에 비판을 가했는가.
그러면서 또한 얼마나 많은 지체들을 귀찮게(?) 했고 힘들게 하고 고민하게 만들고 어렵게 만들었던가.
나의 삶으로 보여준 것은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비판하기 위해서 비판하는 사람은 아닌가.

언젠가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나라의 교육의 부정적인 결과 중 하나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그것의 문제점과 약점을 발견하여 비판하는 태도가 생겨버린 것이라고...
지금 나의 모습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앞선다.

과중한 수업량과 시험, 자취생활, 스스로의 정체성에 끊임없이 고민하며 공동체의 중심에서 고생하는 아솔이...
선교훈련과 늘푸른찬양단 사역, 가정, 공동체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으로 살아가는 영주...
개인적인 삶과 학업, 새로운 수업, 준비하고 있는 시험, 진로, 삶의 불확실함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이름을 열거할 수 없는 많은 지체들...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의 상실과 관계의 실패 속에서 고민하다 다시 공동체의 중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지체들...

그들에게 더 이상의 부담과 어려움을 주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상황에서 비판과 개혁의 간판을 내리고 좀 더 초연하고 담담한 삶의 깃발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나의 짐을 내려놓고 예수그리스도를 찾고 싶다.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장 28,29,30) "

지금의 자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바뀌어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태어나기를 기대하며...

 

2002, 10,20 

쌀쌀한 10월의 셋째주 밤에 제갈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