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을 향하여[11]

2008. 12. 24. 00:28김문일장로 회고록

본향을 향하여[11]

일천구백오십년 십이월 이십일일. 나는 수도경찰학교에 입교하였다. 이곳에서 일개월간의 고된 교육훈련을 받고 종로 경찰서로 발령 받았다. 일천구백오십년 십이월 삼십일일 그믐날 저녁 출동명령이 내려졌다. 나는 다른 경찰관들과 함께 경찰서 뒷마당에 무장을 하고 대기하였다. 무장이라야 구식장총에다 배낭을 등에 진 것뿐이었다. 기동대장격인 경감이 나와서 훈시도 없이 대기하고있는 군용트럭에 전원 승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인솔자의 이름도 행선지도 어떤 지시도 없이 대원들은 밤 열 시경 종로경찰서를 출발하여 창경원 혜화동 돈암동 미아리를 경유 창동까지 와서 역전광장에서 하차하였다. 이곳에서 인원을 다시 점검하였다. 우리는 인원점검이 끝나자 바로 창동거리를 지나 어둠이 가득한 논둑 길과 냇가를 걸어 수락산 계곡으로 올라갔다. 계곡 위의 작은 마을로 올라가서 행구를 풀었다. 그제야 김 경감이란 사람이 자신의 성명을 밝히고 말했다.

"대원 여러분, 이산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외각지대인 수락산입니다. 이제부터 이산을 각 경찰서에서 출동된 경찰기동대가 수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종로경찰서 동지 여러분들은 정상을 기준으로 하여 서남쪽부락까지 경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중공군이 가담하여 인해전술로 삼팔선을 넘어 남하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동대가 이 수락산을 수비하게 되었으니 대원 여러분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경비에 만전을 다하여 주기 바랍니다.
사십 여명의 대원들은 삼개소대로 편성되었고 수비구역도 세 곳으로 구분되었다. 감사하게도 내가 소속된 소대에 믿음의 형제들이 둘이나 있었다. 안 순경과 신 순경이었다. 이 땅에 평화가 찾아오면 목회자가 될 꿈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은 휴식 시간마다 찬송을 부르거나 성경말씀을 토론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은 내게 많은 신앙의 힘이 되었다. 해가 바뀌어 천구백오십일년 일월사일, 어둠이 깃든 수락산 중턱에서 창동을 내려다보니 서울로 질주하는 군 차량 행렬의 불빛이 보였다.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안 순경이 마을로 내려가서 귀동냥을 하고 오더니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우리 국군이 속수무책으로 밀린다는 말을 전했다. 나는 허무 맹랑한 유언비어 일거라고 믿었다. 총하나 없이 비무장으로 수십 만 명이 무리를 지여 꽹과리, 징, 북 등을 요란하게 치며 내려온다니 그런 전쟁이 어디 있겠는가, 더욱이 그런, 총대신 호각과 나팔을 불며 내려오는 적군에게 총을 든 국군들이 밀려 동두천까지 왔다니. 정말 믿기 힘든 유언비어였다.

그 날 밤 자정, 갑자기 철수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본서에 도착하자마자 경무계장의지시가 하달되었다.
"지금 즉시 남하 하게되었으니 서울에 가족이나 친척이 있는 사람은 바로 가서 가족에게 알리고 새벽 세시까지 이 장소로 집합하기 바란다. 만일 그 시간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이탈자로 간주하고 엄히 문책 할 것이다. 서울에 연고가 없는 사람은 여기서 대기하고 연고가 있는 사람은 즉시 갔다오기 바란다."

말이 끝나자 연고가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모두 앞다투어 경찰서를 빠져나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도 단숨에 뛰어나와 을지로 사가 숙부님 집으로 달려갔다. 숙부님 집엔 아무도 없었고 굳게 닫힌 대문에 정빈이 오면 즉시계동으로 연락하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숨 돌릴 사이 없이 계동을 향하여 뛰어갔다. 계동의 몽양 선생님 댁도 대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종로경찰서로 다시 가보니 대부분의 대원들이 모여 있었다. 밤 세시였다. 날이 밝기 전에 한강을 건너야 한다는 인솔경위의 말이 있었다. 경찰서를 나와 구보로 광화문 서대문 마포전차 종점으로 해서 동막 나루터에 이르렀다. 수많은 피난민들이 강을 건너기 위해 아우성이었다.

몇 척되지 않은 목선과 군 보트로 벌떼 같이 몰려든 피난민을 운반하려니 그야말로 살극이였다. 그 날 밤 밤새도록 횃불을 들고 도강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나는 그 참혹한 장면을 보며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건널 때 바로 군대의 추격을 받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뼈아픈 상상이었다.

내가 소속된 종로서원들은 다른 부대보다 먼저 한강을 건너 노량진을 지나 영등포역전 광장에 집결하였다.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대전까지 갔다. 우리 경찰대원들을 대전 역 광장에 대기시킨 인솔자가 이제부터는 기차 및 차량형편이 여의치 못하여 단체행동을 할 수 없으니 각자 수단 것 팔일까지 대구경북경찰국에 도착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나는 김 순경 박 순경과 함께 대구로 향하였다. 피난길은 그야말로 고난의 길이였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피난민으로 가득차 잠 잘 방을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헛간이나

방앗간까지 피난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문전걸식하고 처마 밑에서, 마당짚까리 속에서, 혹은 방앗간에서 새우 잠을 자며 걸어서 대구에 도착하였다. 다행히 명령받은 날짜에 경북경찰국에 들어가 도착신고를 하였다. 경찰국에서 주선한 숙소에 들어가 여정을 풀자 온 몸이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몇 날 며칠을 굶은 얼굴은 피골이 상접했다.

오 일째 되는 날 밤 긴급 출동명령이 내렸다.
"동료 여러분 오늘 이 시간부터 여러분은 소속이 서울경찰국에서 태백산 전투경찰대 소속으로 이관되었으며 이공칠 대대로 배속되었소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전투경찰대의 경찰전투요원으로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소. 이제 여러분은 조국을 위해서 생명을 바쳐 힘차게 싸워야할 때입니다. 우리는 지금 공비토벌 전투를 위해서 출동하게 되었소. 제일 중대부터 순서대로 저기 대기중인 군용트럭에 질서 있게 승차하시오. 이탈자는 가차없이 처벌할 것이니 각자 명심하여 임무에 충실하기 바라오."
듣는 마음이 한없이 착잡하였다. 살아서 내일 아침 동료들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싶었다.

전투경찰부대를 태운 차는 서서히 교정을 빠져나가 밤길을 질주하여 팔공산계곡 산길로 올라갔다. 한참동안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는 듯 하더니 이윽고 산중턱 작은 마을에서 멈췄다. 화전민들이 사는 동네인 듯 했다. 백팔십여명의 전투경찰대원들은 중대별로 소대별로 분산하여 농가에 행구를 풀었다. 적막한 산간벽지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그 날 밤은 아무 일도 없었다.
주둔한지 사흘째 되는 날 밤 두시 경쯤이었다. 안 순경과 같이 한 조가 되어 잠복근무를 하고 있는데 시야를 분별할 수 없는 캄캄한 밤중에 산중턱계곡 아래서 반딧불 같은 작은 불빛이 우리 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는 초긴장 속에 그 불빛을 주시하였다. 불빛은 시나브로 우리 쪽으로 올라왔다. 안 순경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내게 귓속말을 했다.

"김 순경 누구지?"
"글쎄. 이 지역 주민이라면 이 시간엔 나다니는 게 금지된 것을 잘 알고 있을 터인데 누구일까. 아무래도 좀 수상한 일이네."
"기다려보세."
그 때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 순경이 사격 준비를 하면서 소리쳤다.
"누구냐? 손들어."
그 말과 동시에 총소리가 조용한 밤 공기를 뒤흔들었다. 안 순경이 쏜 것이었다. 잔뜩 긴장되어있던 나는 그 총소리를 듣자 얼떨결에 응원사격을 하였다. 정말 얼떨결에 쏘아댄 것이었다.

불빛이 사라졌다. 아마도 바닥에 엎드려 숨은 게 분명했다.
"누구야?"
안 순경이 수풀을 해치고 내려가며 소리쳤다. 조심스레 내려간 안 순경이 잠시 후 마을 주민 한사람을 연행하여 올라왔다. 그 사람은 총소리에 정신을 빼앗긴 듯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심키로 떨어진 마을 친척집에 제사가 있어 갔다가 이제야 온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한편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다. 하마터면 선량한 한 생명을 살해했을 뻔하지 않았는가.

팔공산에 입산 주둔한지 육일 째 되는 날 밤, 드디어 공비의 기습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가 들어왔다. 전투요원 전원이 완전무장을 하고 전투준비를 끝냈다. 서북, 동남으로 뻗어있는 여러 고지에 소대별로 배치되었다. 내가 속한 소대는 남쪽고지통로를 수비하게되었다. 새벽 세 시경 동쪽 수비 고지에서 교전하는 총소리가 요란하였다. 그러자 각 고지에서 일제히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마을이 대낮같이 밝아졌다. 총소리는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고 커지고 있었다. 아군이 남쪽고지로 후퇴하는 게 분명했다. 대원들의 동요가 느껴졌다. 내 마음에도 불안과 초조가 가득했다. 나는 옆에 말없이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를 붙잡고 하나님께 울며 기도를 하였다.

"하나님 저를 사랑하십니까, 분명히 사랑하십니까. 사랑하시는 것을 분명히 믿습니다.
오늘까지 수차래 죽을 뻔한 저를 살려주시고 보호하여 주신 하나님, 이 산골짝에서 또 다시 하나님의 섭리를 빕니다. 이 전쟁터에서 저의 생명을 구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이렇게 무참하게 생명을 잃으면 일평생을 손자를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하시고 기도하신 할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너무도 비참하게 허물어집니다. 저의 죄가 많을지라도 하나님 용서 하시고 저의 생명을 구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께서 절망하시지 않도록 소원합니다. 평화가 오면 집에 돌아가서 할머니와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려고 합니다. 살려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야말로 필사적인 기도였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보니 의지 할 곳이 하나님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치열하던 총성이 들리지 않았다. 사방이 고요해지면서 새벽이 열리고 있었다. 아마도 적이 퇴각한 것 같았다. 마을의 닭들이 새벽을 알리는 소리를 터뜨렸다.
그 날 아침 식사 후 따뜻한 사랑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대대장으로부터 대대본부로 곧 오라는 전령이 왔다. 대대본부가 있는 이장 댁 사랑방으로 가서 대대장을 만나 보았다.

"김정빈 순경, 우리 이공칠 대대를 대표하여 차출하였으니 박남순 경사와 같이 안동에 주둔하고 있는 태백산 지구 전투경찰대사령부에 가서 파견 근무를 하게. 사령부와 대대간의 업무연락은 물론 제반행정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니 성실하게 잘해주기 바라네. 함께 가서 수고할 박남순 경사이니 인사하게."
멀뚱히 서 있는 내게 미남형의 마음씨 좋아 보이는 얼굴이 인사를 했다.

"우리 두 사람이 특명을 받았으니 열심히 근무합시다."
나는 코끝이 찡해오는 걸 느꼈다. 이 어찌 지난밤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신 것이라 믿지 않겠는가. 감사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숙소에 돌아와 헹구를 정리하니 모든 대원들이 놀라며 부러워했다. 오랜 시일은 아니었지만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동료들이라 헤어지는 것이 못내 섭섭하였다. 그들의 안녕을 빌며 박 경사와 같이 보급트럭을 타고 팔공산을 하산하였다. 대구시내로 들어와서 동대구역전에서 안동행 군용트럭을 교섭하여 타고 저녁때 무사히 태백지구 전투경찰사령부에 찾아가서 부임신고를 하였다.

 



'김문일장로 회고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본향을 향하여[13]  (0) 2008.12.24
본향을 향하여 [12]  (0) 2008.12.24
본향을 향하여[10]  (0) 2008.12.24
본향을 향하여[9]  (0) 2008.12.24
본향을 향하여 [8] -6.25 전쟁의 비극 편-  (0) 2008.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