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을 향하여[13]

2008. 12. 24. 00:30김문일장로 회고록

본향을 향하여[13]

 

 

"회계장이 누구요?"
책상 위에 놓여진 상이자가 볼멘소리로 나를 찾았다. 내무과장을 비롯한 다른 직원들은 슬그머니 뒷문으로 다 빠져나갔다. 도세계직원이 나를 가르쳐 주는 순간 그는 비호같이 몸을 날려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책상 위에 앉았다. 그 날렵한 동작을 보니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였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정신이 아찔하였다.

그러나 담당책임자이니 회피할 수도 없어 자세를 바로 하고 정신을 차려서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몸이 비호같이 날세죠? 참으로 놀랐네요."
"상이자로서 몸이나 동작이나 빨라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죠."
"어디서 왔습니까?"
"어디서 오긴 어디서 와요. 서울에서 왔소. 어서 여비나 좀 주쇼."
"마침, 원호담당자가 없어요. 어떻게 하죠?

그러니 내가 가지고 있는 용돈밖에 없으니 이거라도 여비에 보태 쓰시지요. 참으로 미안합니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천환을 꺼내 주었다. 상이자는 코방귀를 뀌었다.

"누굴 거지로 아냐? 천환 한 장만 주게. 어서 더 요구 하기 전에 오천환만 주시오. 그러면 조용히 가겠소."
"오천환이 어데 있습니까. 이것밖에 없습니다."
"이거 정말 누구를 거지로 아나? 오줌이나 싸야겠다. 응!"
그는 하체의 허리춤을 풀고 옆구리에서 고무호수를 꺼내 만지작거리더니 호수로 책상 위에다가 오줌을 줄줄 뿌렸다. 대개의 상이자들은 울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묵묵부답일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 답답하였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내 힘으론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만신창이가 된 이들이지만 그저 딱하고 안되었다는 생각만 할 뿐

도움을 줄 수 없으니 정말 안타까웠다.

"갈 길이 많으니 어서 오천 환만 주시오. 빨리 가게요."
"보는 바와 같이 돈을 빌릴 곳이 없어요. 다음에 다시 오세요."
"계장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 같은 놈을 누가 도와주겠소. 좋은 말할 때에 도와 주시죠. 이러지 말고..."
"지금 현금이 없으니 어떻게 합니까? 나도 많이 주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수중에 돈이 없으니 어떻게 합니까?"
그와 함께 왔던 상이자가 우리의 실랑이를 지켜보다가 왼팔을 걷어올리더니 의수를 빼내 내 책상 위에 턱, 올려놓았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나는 내 책상 위에 놓인 양쪽다리 없는 상이군인과 의수로 된 팔 하나를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었다. 의수의 주인이 내 얼굴을 쏘아보며 고함을 질렀다.

"이 팔은 당신들을 위해서 잘려진 팔이요. 당신들이 누구 때문에 평안하게 이 자리에서 사무를 보게 되는지

알어? 우리들 같은 전쟁의 희생자가 있기 때문이요.

후방에서 편하게 먹고살면 우리에게 보답을 해야지요. 그런데 몇 푼의 여비도 못 주겠다고?"
누가 모르겠는가. 당신들의 마음을, 고충을, 그러나 내가 뭘 어찌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상이자들이 삼 사일이 멀다하고 관공서를 찾아오곤 하였다.

국가예산이 없어 상이자들이 방방곡곡을 누비며 방황하고 고향에서조차 안정된 생활을 못하고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가는 곳마다 냉대 받고 유랑생활을 하는 그들을 보며 전쟁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를 새삼 깨닫곤 했다.

1957년에 나는 장로가 되었다. 내 일생에 있어 가장 큰 기쁨이었다. 나는 더욱 교회 일에 열심을 다하였고

기도와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생각하면 하나님이 나를 장로로 세우시기 위해 사지에서 건져 올리시고 지켜주신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감사의 기도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특히 양평, 양주 각지 교회 청년들을 중심으로 청년 신앙지도와 농촌운동에 심혈을 다하였다.

기독청년연합회 회장으로 피선되어 연합청년운동에 헌신하기도 하였는데 이때가 내 신앙의 황금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1960년 2월 상순 어느 날, 경기도청 회의실에는 각 시장, 군수, 경찰서장, 교육감 및 각 산하기관단체장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모여 최인규 내무장관 주재로 정.부통령선거에 대한 회의가 열렸다.

상기된 내무장관은 격한 어조로 다음과 같은 엄한 훈시를 했다.

"각 기관장 여러분 대한민국의 부흥발전 여부는 이번 실시되는 정.부통령선거에 있습니다.

국부이신 이승만 대통령께서 다시 대통령으로 재선하셔야 합니다. 따라서 국가흥망 성쇠가 이번 선거에 있습니다. 반공이념을 국시로 하며 통치하시는 이승만 대통령 각하를 계속 국부로 모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공산침략을 다시 당해 대한민국은 적화될 소지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기관장 동료 여러분들은 전 공무원과 혼연일체가 되어 애국애족정신으로 이번 정.부통령선거에 있어 압도적으로 대승하도록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은 상부 지시대로 모든 지시사항을 준수하시어 하나도 차질 없이 직무수행에 충실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만에 하나라도 시행의 잘못이 있을 때에는 책임을 추궁할 것입니다.

추상같은 훈시였다. 회의장은 엄숙하고 긴장되었다. 내무장관은 일단 훈시만 하고 밖으로나갔다.

나는 복도로 뛰어나와 현관으로 나가는 최인규 내무장관에게 달려갔다.

"장관님 참 오랜만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그는 팔 년 만에 만나는 옛동지를 알아보았다.
"야, 이거 김 동지 아니야?"
"네, 참으로 반갑습니다."
"지금 어데 있어?"
"양평군에 근무하고 있죠."
"그래? 그러면 나하고 잠시 방에 들어가서 이야기 좀 하지..."
"바쁘신데 제가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그리하겠어? 숙부님도 안녕하시고? 그러면 꼭 한번 내무부로 찾아와요."
"네, 찾아 뵙겠습니다."
"잘 있어. 꼭 한번 와요."
"안녕히 가세요."

장관의 뒤를 따르던 도지사 및 내무국장 비서들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와 최인규 장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우리가 과거의 동지였던 사실을 모르는 그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하였다.

최인규는 장관, 나는 말단군청의 계장이 아닌가. 사실 우리의 만남은 너무도 안타까운 만남이었다.

나는 그를 다시 만나야할지 만나지 말아야 할지 주저하였다.

그러나 실망감이나 좌절감 같은 건 없었다. 나는 장로란 직분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 않은가.

신앙에 있어선 내가 그보다 한 등급 위일 것이었다.

며칠 후 도청에서 각시군 사회계장회의가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도청서무계장이 잠시 만나자는 것이었다.

"김 내무장관과 어떻게 아시죠?"
"왜 그런 것을 물으시죠."
"보통지면 관계가 아니라 매우 절친한 사이인 듯 해서요."
"특별한 인간 관계는 없고 그분의 고향은 광주고 나는 강 하나 사이에 둔 양주군이 되어서 지면이 있죠.?
그는 그래요? 하더니 최인규 장관이 주더라며 메모지를 건네 주었다.

삼일 전에 장관이 도청에 들렀다가 내게 전해달라고 부탁하고 갔다는 것이다.
"김 계장님은 튼튼한 장관 빽이 있어 좋겠습니다. 하..하.."
"내 나름대로 소신껏 사는 것이 도리지 누구를 찾아다니면서 출세하면 무엇합니까?"
나는 내무장관을 찾아가 보라고 권하는 그의 말을 거절하고 양평으로 돌아왔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전국적으로 선거열풍이 가열되었다.

공무원들은 사무도 전폐하다시피 선거계몽운동에 열중하였다.

도처에 불미스러운 유언비어가 확산되어가고 있었다. 자유민주주의 수호자들에게는 행동의 감시와 제약을

받는 인권유린의 사례가 난무하였다. 참담한 부정선거운동을 보다못한 우리 교회 송두규 목사님이 주일 낮

대예배 시에 부정을 성토하는 설교를 하였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회개하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세례요한도 광야에서 부패한 사회를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외치셨습니다. 마의 세력들이 이승만 대통령을 재당선시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음모와 계략으로 부정선거를 감행하려고 사전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민주시민 온 국민들은 부정선거만은 막아야 합니다. 부정선거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정부와 집권당은 회개하고 정의로운 국가를 세워야 합니다. 만일 이대로 부정이 계속되면 이 땅에서의

민주주의는 말살되고 또한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가 임할까 두렵습니다.

세례요한의 광야의 소리를 우리나라 백성들이 들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세례요한의 목소리를 듣고 계십니까. 귀를 기울여 보세요. 지금 이 시간에도 교회 문 밖에서는 하나님 두려운지 모르고 무서운 부정의

흉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눈을 똑바로 뜨고 저들의 행동을 감시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러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열정적인 정의의 호소에 내 등골이 오싹하며 전신에 전류가 흐르듯 사지가 떨렸다.

좌중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형사들의 가족들은 얼굴 안색까지 붉게 상기되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송 목사님은 더욱 목에 힘을 주면서 흥분된 어조로 부르짖었다
"민주국가에서는 부정선거가 있을 수 없습니다. 추방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정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어떠한 부정에도 타협할 수 없는 것이 교회입니다."

예배가 끝나자 교회 내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목사님은 복음의 말씀만 전하면 될 터인데 왜 시국에 대하여 부정 운운하며 논하느냐고 성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정을 배격하고 정의를 실행하는 것이 사도의

의무요 교인의 사명이 아니냐고 받아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날 오후 우리 교회 집사님의 아들인 이형사가

집에 찾아왔다. 그를 따라 동네 다방으로 가니 안면이 있는 장형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김 장로님 주일날 쉬지도 못하고 나오시게 하여 미안합니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용건이 무엇입니까?"
"다름아니라 오늘 송 목사가 정.부통령선거에 있어 부정선거를 음모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설교를 하였다면서요."
"부정선거를 음모 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부정을 배격하고 공명선거를 하라는 것이고 교회는 정의에 서야한다고 한 것이죠. 성직자인 목사님으로서야 당연한 말씀이죠."
"부정한 선거를 사전에 모의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면서요?"
"음모가 있었다는 것보다 경계심을 가지자고 하신 말씀이죠."
"목사가 가만히 있지 왜 선거에 대하여 왈가왈부 합니까? 더구나 강단에서요.

김 장로님은 공무원이시니 목사에게 삼가 조심하도록 말씀을 해주세요.

선거법 위반으로 의법 조치하여야 하는데 공무원 가족들이 많이 나가는 교회라 경솔히 처리할 수도 없고

참으로 난처합니다. 서장님께서 노발대발하시고 즉시 연행하라는 것을 진상을 파악해 보겠다고 겨우 말미를 얻고 나왔습니다. 당분간 동태를 더 파악하여 보고 조치하겠으니 근신하도록 협조하여 주세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피차 불미한 사례가 없도록 장로님께서 협조하여 주십시오."

"송 목사님께 내가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리죠."
나는 그들과 헤어져 바로 송 목사님을 찾아갔다. 교회에 오는 공무원들의 입장과 특히 경찰공무원 가족의

입장을 헤아려 선거에 대한 말씀은 자제하여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다.

그러나 송 목사님의 부정선거를 막자는 설교는 계속되었다. 얼마후 이형사가 또 군청으로 나를 찾아왔다.
"김 장로님 오늘 송 목사를 연행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미리 김 장로님께 말씀드립니다."
나는 펄쩍뛰었다.

"그것은 어떠한 이유라도 아니 됩니다. 목사님은 강단에서 불의한 말 외는 어떠한 말씀이라도

그것이 정의로운 것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말씀을 선포할 의무가 있습니다.

송 목사님은 없는 사실을 날조하여 말씀하신 것은 없습니다. 송 목사님을 두시고 차라리 나를 가두십시오."
"서장님께서 의법 조치 하시려고 결심하셨습니다."
"서장님이 왜 대범 하시지 않고 사소한 지엽적인 것을 가지고 그러한 처사를 하려합니까?

이 형사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양평군에 교회가 무려 스물 일곱개나 있습니다.

군민의 여론을 좌우하는 것도 교회입니다. 목사님을 구속해 보세요. 옳은 말하는 목사를 무고히 경찰에서

가두었다고 양평 군민들이 야단들일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여론을 감안하여 선거가 끝날 때까지 묵과하고 끝난 후에 불법 여부를 가려도 충분할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선거일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장님께

다시 진언하여 목사님을 연행하지 않도록 하세요.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 느껴집니다.

나도 목사님께 자중하도록 다시 권하겠습니다. 구속하려면 나를 하세요."

"장로님을 왜 구속합니까?"
"교회의 성도 대표가 나니까 그렇지요.

어느 장로가 목사가 구속되는 것을 보고만 있어요. 공동책임을 져야죠."
"목사님을 구속하면 교회는 물론 군민들의 여론이 좋지 않겠죠?"
"물론이죠. 서장님께 선처하도록 하세요. 구속만은 피하도록 하셔야죠."
"가서 다시 한번 서장님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이 형사는 곧 경찰서로 들어갔다. 온종일 마음이 무겁고 불안하였다. 혹시라도 오늘 중으로 목사님이 구속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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