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을 향하여[15]

2008. 12. 24. 00:33김문일장로 회고록

본향을 향하여[15]

 

혁명정부가 수립된지도 삼개월이 지났다. 이제는 모든 행정이 착착 순조롭게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팔월이십일경 무더운 삼복중이었다. 각 시군의 과장에 대한 인사이동이 단행되었다. 나는 포천군 산업과장으로 영전 보직발령되었다. 새삼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친구를 돕겠다고 양평

군에 발을 들여놓은 지 팔년의 세월이 흐른 후였다. 양평을 떠난 다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특히 교회가 내 발을 붙들었다. 교회를 위하여 종신토록 봉사하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하고 장로의 직분까지 받은 나였다. 정든 교회를 떠나려니 주님의 사랑과 명령을 저버리고 주님을 배신하는 듯하여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장래의 소망과 희망이 넘치는 영전이 아닌가하는 육의 위로도 있었다.
포천군에서 김철수산림계 차석이 트럭을 가지고 이삿짐을 가지러왔다. 김철수차석은 두달전까지 양평군에서 근무하다가 고향인 포천군으로 간 사람으로 내가 의지할수 있는 직원이었다.

포천군은 이십여년전에 동두천금융조합 근무당시 식산계 조직관계로 군청에서 회의가 있어 한번 다녀온 곳이었다. 이십여년 간 얼마나 발전하였을까 상상을 하며 어린딸만 넷을 데리고 아내와같이 낯설은 포천군으로 부임하였다. 산업과장 사택이란 곳에 들어가 이삿짐을 풀고 주위를 돌아보니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방둘, 부엌, 마루한칸이 전부인 집인데 관리가 전연 되어있지 않았다. 부엌의 벽은 뚫어지고 앞마등을 위시하여 집주위 전체가 장마에 의해 돌짝마당

이 되었고 집뜰과 양계장은 잡초가 무성하여 호랑이가 새끼를 칠 정도였다. 이 사택이 바로 나의 전임자가 몇일전까지 살던 사택이란 소릴 듣고 이러니 군사혁명이 일어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월중순이었다. 사전예고도없이 갑자기 한신내무장관이 곧 순시내군 한다는 긴급연락이 왔다. 전공무원들이 초긴장이 되었다. 마침 이날은 같은 시간에 군재건본부 주최로 관내기관장 연석회의를 소집하여 교육구청 회의실에서 개최하였다. 그러므로 윤내무과장은

군청에서 장관을 영접, 안내하기로하고 내가 기관장회의를 주제하였다. 기관장회의를 끝내고 내무과장에게 전화를 하니 장관은 예정시간보다 삼십분 늦게 도착하여 간략히 관내사항을 브리핑받고 청사주위를 한번 둘러본 후 육군단으로 직행하였다고 했다. 내가 군청에 돌아오자 윤 내무과장이 말했다.

"하여튼 김과장님은 복이 많으신분이요."
"왜 내가 복이 많습니까. 무슨뜻이죠? 구체적으로 말씀을 좀 하시죠."
"오늘 행사는 바꾸어서 진행할 것을 그랬어요. 김과장님이 장관을 영접하고 내가 기관장회의를 진행했을 것을 그랬어요."
"그건 또 무슨 뜻입니까? 마땅히 내무과장이 장관을 영접해야죠."
"오늘아침 일진이 좋지않더니 공연히 내무장관으로부터 하찮은 일로 책망을 들었습니다."

"브리핑은 큰 실수없이 했는데 청사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 하시기에 아침에 대청소를 해서 안심하고 주위를 안내하였죠. 그런데 하필이면 청사 뒤 잔디밭에 생각지도 않은 개똥이 한무더기 있었어요. 그것을 본 장관이 노발대발하여 청사 주위의 개똥하나 치우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내무과장이냐... 서류만 잘 챙기면 과장이냐... 직원들의 손이 잘 가지 않은 곳
을 찾아 깨끗이 하는 것이 과장의 임무가 아니요? 하면서 면전에서 면박을 주고 그대로 육군단으로 직행하더군요."

"아... 그런일이 있었군요."
평상시 늘 명랑하였던 윤내무과장의 얼굴이 침통해보였다. 그날밤 아홉시경 윤내무과장을 면직 해임한다는 통보가 전문으로 내려왔다. 전문을 받은 당사자는 물론 나도 놀랐다. 개똥 한덩어리가 군청 내무과장을 파면시킨 것이다. 그날 밤 열한시경 행정계장을 대동하고 윤과장을 위로차 관사로 찾아갔으나 말문이 열리지를 아니하였다.
"윤과장님 무엇으로 위로할지 모르겠군요... 다시 복직기회가 있겠지요."

"세상에 이런 법도 있습니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그놈의 개똥이 이렇게 인생의 전도를 망칠수 있습니까. 너무도 비정한 인사조치입니다."
"일시적인 경고적 인사조치겠죠."
"국가공무원직을 완전히 박탈당한 것입니다."
"......"
사실억울한 처사였다. 그는 아무 영문도 모르고 서있는 아내를 향하여
"무엇하는거야. 어서 술상이나 차려와요. 서서만 있지 말고요."

하고 소리쳤다. 그의 아내는 그때까지도 남편이 면직된 것을 모르는 듯 하였다. 그는 아내가 차려온 술상앞에 앉아 순식간에 소주한병을 마시더니 억울하다며 대성통공을 하였다. 이것이 군사혁명정부의 처사냐고 흐느껴 우는 그에게 나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육십이년 유월초순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는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었다. 수화기를 드니 다급한 음성이 들렸다.
"산업과장이요? 나 박창원지사요. 필기 준비하시오."
"네."

"받아쓰시오. 긴급지시 제일호 이급비밀 취급. 첫째 즉시 군민전공무원 근무처에서 대기할 것, 둘째 경찰서장과 협의하여 경찰관 육명, 군직원 육명 즉시 대기할 것. 단, 경찰관은 완전 무장할 것, 셋째 트럭한대 완전정비하여 군청에서 대비할 것, 넷째 각 면 총무는 오늘밤 이십사시까지 군청에 대기할 것, 이상, 그리고 군수는 어데있소?"
"영북면에 출장중입니다."
"즉시 연락하여 군청에서 대기하도록 하시오."

"네, 즉시 시행하겠습니다."
나는 영문도 모르는 체 긴급지시대로 사무실에 나와서 전 공무원을 대기하도록 조치하였다. 한시간후에 제이호 긴급지시가 하달되었다.

"긴급지시 제이호 이급비밀 취급.
첫째, 일호에서 지시된 경찰관 육명, 군직원 육명 은 즉시 준비된 트력을 가지고 오늘밤 이십사시까지 도청에 도착할 것
둘째, 군면 전직원 대기상태 다시한번 확인할 것 이상, 아직도 군수는 돌아오지 않았소?"
"곧 도착하십니다."
"군수가 돌아오면 즉시 긴급지시 사항을 알리고 전원 이석하지말고 대기하도록 하시오."
나는 경찰서장과 협의하여 즉시 경찰관과 군직원을 트럭과 함께 도청으로 보냈다. 한시간후에 이창석군수도 출장지에서 돌아왔다.
"긴급지시 내용이 무엇이요?"

"이급비밀입니다. 여기 전언통신문이 있습니다."
전언통신문을 받아본 군수도 내용을 몰라 어리둥절 할 뿐이었다.
"무슨 일일까요?"
"글쎄올시다. 전연 예측할 수가 없군요. 경찰관을 대동하라는 것을 보면 중대한 것 같습니다. 지사님 지시대로 직원과 트럭을 도에 보냈는가요?"
"삼십분전에 출발하였습니다."
"수고 많았군요."
밤 자정이 지나서 지사로부터 다시 확인 전화가 왔고 밤두시경 도청에 갔던 직원 및 트럭이 도청을 출발하여 군청으로 돌아온다는 전화가 왔다. 트럭은 새벽 네시에 군청에 도착하엿다. 큰 나무상자가 실려와서 군수실에 보관되었다. 이튿날 아침 일곱시 뉴스를 통하여 화폐개혁포고령이

선포되었다. 도지사로부터 계속하여 통화개혁 취급절차에 대하여 긴급지시가 하달되어 군민전공무원 및 경찰관이 총동원되어 신화폐 교환업무가 진행되었다. 십대일로 환이 원으로 교환되엇다. 일정액만 교환하고 그외 금액은 전부 우선 신고하여 예치하게 되었다. 이 때 여러 가지 웃지못할 비화가 속출하였다. 신고독려차 창수면 오지마을을 찾아갔을 때다. 산속에 홀로 거주하며 구걸하여서 겨우 연명하는 노인이 화폐개혁 소식을 듣고 애지중지 모아 다락속에 깊숙이 숨겨두었던 거금, 곰팡이 냄새가 물씬나는 참으

로 오래된 지폐뭉치를 들고와서 눈믈을 흘리며 신고하는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액이었다. 신고접수하는 전직원들이 이 세상에 이런일도 있는가하며 경탄하여 깜짝놀랐다. 거금을 두면서 왜 결식생활을 했을까. 노인의 인생관은 무엇인가. 왜 멸시천대 받으면서 수전노생활을 하고 있을까. 다음에 무엇에 쓸 것인가. 모두들 수군거렸다. 교환 규정에 의하여 일정금액만 교환하고 잔액은 예치통장으로 교부하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해 칠월말경이었다. 일동면으로 출장하였다. 면장과 업무협의를 하고 있는데 면장실의 전화벨이 울렸다.
"일동면장입니다. 네? 김과장님 계시냐구요? 네 여기 계십니다."

"나 산업과장입니다. 누구세요?"
"이철우행정계정입니다. 과장님 영전을 우선 축하드립니다."
"아니 영전이라구요? 무슨뜻입니까?"
"양정과 관리계장으로 영전 발령되셨습니다."
"양정과로요?"
"네..."
"몇일부로 발령되었죠?"
"팔월일일자로 발령되었습니다."
"그러면 내일 부임하여야 되겠네요?"

"속히 귀청하시기 바랍니다."
저녁때에 출장지에서 귀청을 하니 대기하고있던 전직원들이 축하인사를 하는것이었다.
"과장님 우리도 도청에가면 반가운 과장님이 계시니 점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과장님께서 짜장면이라도 한그릇 사주시겠죠? 과장님 안그래요?"
농담을 좋아하는 축산계장의 농담으로 전과원이 폭소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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