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13. 23:45ㆍ칼럼
전도 체험기
옥권사님과 거제 두모교회를 방문했을 때 2010, 06.25
< 영안실에서 전도하다.>
아침에 구역장 옥 권사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장로님, 장로님한테라도 연락을 해야 될 꺼 같아서 전화를 했어예. 김*태 할머니가 소천하셨다카네요.”
김*태 할머니라면 전에 같은 구역 성도로서 박스 줍던 할머니다.
혼자 손녀, 손녀를 키우시며 어렵게 사시던 분이신데, 교회에 다니시다가 한참 나오시지 않아서 현재는 교회 요람에서도
이름이 빠진 노인이다.
“ 아, 그 손자 있잖는교, 김윤우(가명)가 전화를 어젯밤에 해왔능기라예. 할매가 죽었다카미 전화가 왔길래
내가 "윤우야 그래 니가 김윤우가? 그래, 그 동안 왜 그리 소식이 없었디노? 카고 물으이 인천에 있었다카능기라요...
교회에 알리기는 좀 뭣하고 장로님한테라도 알려야 되겠다 싶언기라요.“
“ 어디에 모셨다캅디꺼? ” “효*병원이라카는데 대구공고 네거리 부근이라 카민서 큰길가에 보인다카데요... ”
“ 그라마 권사님 같이 가보실랍니까? 한번 가봐야 안되겠심니꺼? ”
약속한 시각에 옥 권사님을 만나서 효*병원 지하 영안실에 들어서니 안내판에 김 할머니 이름만 있었다.
지하 영안실은 오늘 김 할머니만 모셔져 있어서 조용하고 썰렁했다.
우리가 당도했을 때는 문상하러 와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주방 일을 돕기 위해 온 젊은 아가씨 둘과 손자 윤우와 낯선 50대 남자가 영안실을 지키고 있었다.
국화 꽃송이도 몇 개 놓여 있지 않은 단에 헌화하고 상주들과 맞절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윤우 아버지 되십니까? 말씀은 들었습니다. 저는 성동교회 장로 제갈유태라고 합니다.
이쪽은 옥 권사님이십니다. ”
50 대 남자는 윤우 아버지였다.
인사를 한 후 빈소 방에서 나와 우리는 앉은뱅이 식탁에 마주 앉아서 맞은편에 있는 윤우를 보니
늠름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7년 전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이는 이제 스무 살 청년으로 성장해 있었다.
옥 권사님이 윤우를 보고
“윤우야, 그래 할머니가 언제 돌아가셨노? 길에서 만나면 모르겠다.”
“그동안 어디 있었노? ”
“지금은 인천에 있어예”
“누나는?" ”누나는 대구에 있심더. 지금 밖에 볼일 보러 나갔어예...“
“ 그래 지금 교회에 다니고 있나? ”
“이따금 나가고 있어예”
내가 물었다.
“ 그래? 어느 교회? ”
"요즘은 공부한다고 못 나갔어예 ....“
말하는 투가 교회에 안 다니는 것 같았다.
7년 전, 구역 식구로서 관리를 하고 있을 때까지 윤우 누나는 교회에 다니지 않았지만,
윤우는 성동교회 초등부에 다녔던 아이다.
“윤우 아버지... 우리가 윤우 할머니가 고생하시면서 손자, 손녀를 잘 키우고 있는 거 보고
참 대단한 할머니다 -- 하고 생각했습니더. 마지막에는 교회 오실 시간이 없다카면서
안 나오셨지만, 우리는 그래도 한동안 윤우 할머니와 이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를 했심니더. ...“
“ 예, 감사합니다.”
윤우 아버지는 수염을 깎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대체로 선한 느낌을 주는 얼굴이었다.
“그래, 믿는다카시던데......? ”
“ 네, 교회에 뜨문뜨문 다니고 있긴 합니다만.” 초면인 윤우 아버지의 말소리는 힘이 없었다.
우리가 구역예배를 다닐 때 듣기로는 경제적인 문제와 집안 사정 때문에 두 아이를 데려고 가서 키울 입장이
못되어 나이 많은 할머니( 장모가 된다) 에게 맡겨 놓고 있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웬만하면 데리고 가서 키우지.'
우리가 못마땅하게 여겼던 사람이다.
옆에 앉은 옥 권사님이
“윤우 아버지도 만나보니 좋으네요. 이제는 윤우가 아버지 곁에 있으이 좋지예 ”
“ 예...”
나는 앞에 앉은 아버지와 아들에게 여러 말로 전도를 했다.
내 나름 요즘 잘 써먹는 말 ....
“세상에는 종교도 많습니다. 유교,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종교가 많습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저마다 한결같이 바라는 것은 불교에서는 극락이라카고,
우리 기독교에서는 구원받는다 카기도하고 죽으면 천당 가는 거 아닙니까? ...” 로 시작해서 열심히 전도했다.
집을 나설 때 얼른 들여다보고 바로 나오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질 못하고 시계를 보니
무려 2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옥 권사님과 전도하고 있는 동안에 다행히도 영안실로 찾아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낮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전도하라고 하나님이 막았는지 문상객이 한 사람도 오질 않았다.
전도는 절정에 이르고 드디어 윤우 아버지가
“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영접을 하는 겁니까? ” 내게 물었다.
“ 예수 영접하시겠습니까? ...”
“네,..”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던 윤우가 입을 열었다.
“장로님, 나도 다시 영접하께예...”
기대도 하지 않았던 뜻밖의 일이었다.
“그러면 한 사람씩 영접 기도를 하입시다. 먼저 아버님부터 제 기도를 따라 하입시더. “
두 부자를 앉혀 놓고 장시간 전도를 한 끝에 성령님의 감동으로 두 사람은 예수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로 다짐했다.
“ 축하합니다. 오늘부터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으니 하나님 자녀답게 권세를 누리며 사십시오.
이제부터 하나님 뜻대로 사실 때 하나님께서 복을 많이 주실 겁니다.
내 뜻대로 살지 마시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윤우도 앞으로는 교회에 빠지지 말고 꼭꼭 잘 다녀라이."
밖으로 나오니 빗줄기가 세차게 내리꽂히고 있었다.
“ 장로님, 오늘 우리 참 잘 왔네요. 하나님도 기뻐하실꺼라예. 윤우 아버지 예수 영접시키고 얼마나 좋은 일 했슴니까예.“
옥 권사님이 나를 쳐다보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하는 말씀에
“ 맞습니더,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가 전도하도록 비도 많이 오게 하시고, 그래서 문상객이 한 사람도 안 왔던 모양이네예.“
맞장구를 쳤다.
옥 권사님을 전철역까지 태워주고 가게로 돌아오는데 얼마나 좋은지.
차창밖엔 빗줄기, 내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빗물을 튀기며 달리는 오피러스, 차안은 바깥과 전연 다른 조용한 곳.
하나님의 보호 아래 산다는 것이 이와 같은 것 아닌가..
오디오를 켰다.
소망이가 연주하는 피아노 CD에 맞춰서 "내 영혼이 찬양하네.... " 찬양을 했다.
충만하게 채워지는 기쁨.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두 사람이 오늘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저들이 예수 잘 믿고 신앙생활 잘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오늘 말도 막힘없이 잘되게 하신 것 감사드립니다....."
구원 얻을 영혼을 오늘 우리에게 붙여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가게로 돌아와서 오후 내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냈다.
2009,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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