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홀로서기는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가...

2021. 3. 13. 22:20구, 홈페이지 자료

딸자식 곱게 기르다가 시집 보내는 부모 심정을 딸을 시집보내보지 않고서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만, 이번에 소망이 자취방을 얻어 혼자 살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고 내려오면서

어렴풋하게나마 그 아픈 마음을 짐작해 볼 수가 있었습니다.

 

3년 전 평창동 예고 옆에 하숙을 시킬 때, 하숙방에 옷이며 책상을 들여놓고 헤어져

떠나 올 때도 마음이 영 허전하고 안되었더니 봉천동에 원룸을 세 얻어서 밥솥이며 밥그릇, 도마, 대야, 이부자리 등 생활 도구들을 장만해 주고 오면서 느낄 수 있었던 그 기분, 가슴속에서 싸하게 번져오는 아릿함은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내가 먼저 내려오고 아내가 하루 더 머물러 있다가 내려왔는데, 아내가 내려와서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또 한 번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밥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솥에다 쌀을 씻어 넣고 물을 손등으로 재는 것까지 설명해주다가

"소망아 밥을 할려면......" 말하다가 그만 눈물이 나서 울고 소망이도 울먹이고

했던 모양입니다.

 

어제 낮에 또, 소망이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학교 갔다가 돌아와서 제 혼자 밥을 차려 먹으려고 하다가 식은 밥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묻는 것 같았습니다.

" 엄마 밥을 어떻게 뎁혀야 돼?.."

" 소망아........ 물을 약간 데워서 말아먹어..."

아내의 음성이 약간 떨리는 것 같았고 내 가슴도 찡해 왔습니다.

" ............"

물에 말아 먹을 소망을 생각해보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젊을 때 누구나 고생을 해봐야 된다' 고 그러지만, 막상 내가 당하고 보니 그게 그렇게

쉽게 할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 지 혼자 밥할 줄 알기나 하겠나?... 잘 가르쳐 주지 그랬어? "

아내에게 시큰둥하게 물었더니

" 그러잖아도 가르쳐 주다가 지도 울고 나도 울었지 뭐...."

그저께 일을 떠올리면서 아내가 또 울먹이려고 해서 나는 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숙할 때는 그런 걱정은 없었는데, 막상 밥하는 법을 가르쳐 주려다 보니 마음이 아파서 울었다는 겁니다.

" 엄마 괜찮아... 유학 가려면 미리 해봐야 되잖아..." 하며

소망이가 제 엄마를 달랜다고 말을 했는데 아마 소망이도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오늘도 반찬 때문에 전화가 왔습니다.

" 소망아 그것은 버리고 새로 해..."

그저께 해주고 온 된장찌개를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느냐고 묻는 것 같았습니다.

 

하숙집에 있을 때는 마침 대구에서 올라간 학생들이 함께 있어서 외롭지도 않았을 것이고

해주는 밥 먹고, 해주는 빨래 입고 학교만 다니면 되었는데 이제는 모든 것을 제 손으로

해야 하니 처음 하는 일이 얼마나 서툴고 어려울까 안타깝기만 합니다.

 

" 일주일에 한 번씩 엄마 올라와. ?"

소망이가 기대하는 것은 한 번씩 제 엄마가 올라와서 반찬도 만들어 주고, 빨래도 해결해

주는 것인데 직장에 매인 아내가 그렇게 할 수는 없는 형편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안쓰럽고 힘 드는 것을 체험해 보고서야 딸 가진 엄마들이 딸을 시집보낼 때

이것저것을 사주고 챙겨 주는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무는 때가 되면 낙엽을 떨어뜨리며 제 혼자 잘 서 있어도 사람은 자식을 그렇게 쉽게

떼어내지 못하는가 봅니다.

 

 

 

 

2001. 11. 29   00:18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