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부름 받은 젊은이들에게

2021. 3. 13. 23:27구, 홈페이지 자료

신앙과 사상이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함께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직장에서도 그렇고 사회생활을 할 때도 신앙과 사상이 같지 않으면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거리감이 생긴다.
그래서 예로부터 유유상종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같은 뜻이나 취미를 가진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동호회를 만들어서 취미와 같은 뜻을 더욱 살리고 있다.

한집에서 생활하는 가족 간에도 신앙이 틀리면 불화하게 되고 갈등이 생기고
마음이 불편해서 여간 힘들지 않다.
그런 점에서 가족 간에 신앙이 같다고 하는 것은 우선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집안이든지 복음이 들어가게 되는 것은 한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통상적이므로 온 가족이 신앙으로 하나가 되기 까지는 어쩔 수 없이 갈등과 혼란의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이 보통이다.
누가 먼저 예수를 믿게 되면 다른 가족들이 핍박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방해를 하기도 한다.

이럴 때 먼저 부름을 받은 사람이 가족들을 구원시키는 사역을 맡아야 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어려움을 참고 나가야 한다.

여기에 하나님의 상급이 있게 되고 그 자신의 신앙도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므로 먼저 복음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이 일군으로 인정받았다는 깊은(?) 뜻이 있기에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특별한 상을 주시기 위하여 부르신 까닭이다.
어려움을 참고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면 가족들의 영혼을 살려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지 않는가?
어려움을 주신 뒤에는 면류관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내가 먼저 가족들을 예수께로 이끌 인도자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용기를 잃지 말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성동교회 젊은이 중에는 아직 부모님들이 믿지 않고 있어서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있는 줄 안다.
격려할 겸 해서 나의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우리 집 경우도 내가 먼저 예수를 믿게 되었고 부모님들은 나중에 믿으셨다.
나는 18세 때에 전도를 받고 동네 가까운 교회(비산교회)에 수요일 예배시간에 처음 출석하였다.
그 후 달산교회(북비산 네거리 소재)에 등록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였다.
신앙이 점차 무르익게 됨에 따라 자연히 제사 문제가 대두되어 아버지(1970년 소천)와 제사 문제로 부딪히게 되었다.
원래 아버지는 효성이 지극하여 효자로 소문이 났고 동네에서도 인정하는 효자라 시(市)에서 주는 효자상까지 탄 분이셨다.
(어머니께서 열녀 상을 타셔야 할 것을 아버지께로 상이 간 게 아닐까 생각했던 적도 있다.)
우리 할머니께서는 술을 많이 드시기로 소문난 노인이셨다. (효목2동에 살던 때다.)
더러 술에 취하셔서는 동네 골목길에 쓰러져 주무시기도 하셨는데 이웃 사람이 기별을 해 주면 어머니께서 업고 오시기도 하셨다.
(내가 다섯 살 적 이야기다.)
아버지께서는 일하러 나가셨다가 집에 오셔서 술을 드시고 취한 채로 주무시는 할머니를 보시고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고 아침이 되면 해장국을 같이 드시고 또 용돈을 주셔서 할머니께서 술집에 나가셔서 동네 사람들에게 술대접을 하시도록 하셨다.
중풍으로 쓰러지신 할머니를 아버지께서는 (어머니께서 더욱) 극진히 3년 이상을 봉양하시었는데 싫은 기색을 조금도 하시지 않고 대소변을 받아 내셨다.
어머니(이선이 집사)께서 더 고생을 하셨지만 이런 일들로 해서 아버지께서 효자 상을 타시게 되었던 것이다.
부모에 대해서 이런 분이셨기에 내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서는 제사를 드리는 날이면 잠자는 나를 꼭 깨워서 제사에 참여시키셨다.
제사 드리는 것으로 효성을 이어 가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커서 교회에 가면서 부터 제사를 거부하니까 아버지께서는 교회에 다니는 것이 부모 제사를 반대하는

동기가 되었으므로 교회를 원수처럼 생각하시게 되셨다.

나는 다른 문제들은 아버지께서 하자고 하시는 대로 다 따랐다.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도 드렸고 열심히 내 할 일을 다 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살아 있을 때까지는 내가 제사를 지낼 터이니 내 죽거들랑 니 맘대로 해라 " 하시면서 제사를 계속하셨다.
제사 지낼 때 아버지께서 상 앞에서 절을 하시고 나는 따로 서서 기도하였고
밥을 떠서 물그릇에 넣는 일이나 술을 따르는 일은 아버지께서 혼자 다 하셨다.

"대한민국 사람이 다 예수를 믿어도 나는 예수를 안 믿는다.!"

내가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하면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교회 일을 열심히 하면서 신앙 생활하는 즐거움으로 살았고 아버지는 계속 술 드시는 즐거움으로 사셨다.
할머니께서 술 때문에 당신을 그처럼 고생시킨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그처럼 술을 끊지 못하시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술에 취하시면 어머니를 구타하시기도 하셨다.
알코올 중독 증세가 나타나고 따라서 우리 집안의 분위기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동생들도 아버지를 싫어하고 어머니의 편이 되니 아버지는 더욱 외로워하셨고 술만 드셨다.
다섯 아이를 책임질 수 없는 무능력한 아버지였다.
가난과 아버지와의 갈등, 계속할 수 없는 학업으로 짜증이 날 형편이었지만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어린 나이에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었다.
나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은 그런 나의 젊은 날의 큰 위안이었다.
아버지께서 예수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 기도하였다.

당시 중앙교회기도실은 두 군데 였는데 한쪽은 남자실이고 한쪽은 여자실이었다.
남자 기도실은 나와 내 친구(손길수, 소천)가 늘 차지했다.

나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하신 말씀을 믿었다.
내가 입대를 앞두고 아버지께 "내가 보고 싶으실 때면 내가 출석하던 교회에 나가시고
위로를 받으십시오" 말씀드렸을 때 아버지는 "그러마- - -. " 하셨다.
군 입대 후에도 나는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 계속 기도했다.

내가 군에 있을 때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와 함께 비산동에서 동대구시장 안에 있는
중앙교회까지 (약 10km) 걸어서 출석하셨다.
아들을 보고 싶은 생각에 다니셨다고 한다.

그때 아버지의 모습은 와이셔츠 주머니 속에 담배갑이 보였고 교회당 출입문을 나서자마자 담배를 피워 무시고

다니셨다고 한다.

김충기 목사님(현, 강남 중앙교회 담임)께서는 집회를 다녀오신 토요일 오후에
자전거를 타시고 비산동 우리 집까지 심방을 자주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찾아오신 김 목사님이 고마워서 교회에 다니셨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께서 숨을 거두실 때 나는 아버지를 꼭 껴안고
"아버지 먼저 가시면 저도 곧 따라 가겠습니다. 지금 가시면 아는 사람들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두려워 마시고 하나님 품으로 가시게 되니까 안심하십시오- - -. "
말씀드리고 기도를 따라 하시도록 했다.


힘없는 목소리로 기도를 따라 하시다가 아들의 품안에서 숨을 거두신 우리 아버지, 편안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그 하신 약속을 신실히 이행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았고 감사의 찬송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 사람이 다 예수를 믿어도 나는 안 믿는다 '고 큰소리치시던 아버지의 고집을 꺾으시던 하나님을 오늘도 나는 믿고 있다.

불신의 울타리, 저주의 쇠사슬, 가난의 웅덩이에서 행복한 가정을 일구워 내는 데는
믿음의 긴 세월이 필요하고 오직 기도와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생명은 육이든 영이든 하나님께 있는 것임을 믿고 눈물의 기도와 인내로 때를
기다리면 하나님은 기쁨의 열매를 주실 것이다.

먼저 부름을 받은 젊은이들에게 권고한다.
그대들이 아무리 지금 형편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낙심하지 마라.
낙심은 믿는 자가 가져서는 안 될 것.

기도만이 그대의 무기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어떤 환경도 기도의 창을 막아내지 못하리라.

어려운 시절이 지나간 후에는 아름다운 시절이 그대들 앞에 올 것을 나는 확신한다.
시련이 크면 상급도 크다.

기다림의 기간이 길다는 것은 더욱 숙성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지만 말고 오늘 밤을 기도실에서 야곱의 씨름을 싸우기 바란다.
가족들의 생명을 주시리라.

2000 0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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