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사랑의부부 정기연주회를 마치고 (上)

2008. 11. 25. 08:49칼럼

 

 

제 14회 정기 연주회를 마치고 (上)
오늘은 우리 대구 사랑의 부부 합창단 정기 연주회가 있는 날인데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더니 점심 때 쯤 부터는 진눈깨비가, 3시쯤에는 제법 큼지막한 눈송이들이 흩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대구에는 올해 첫 눈인 셈이었지만 반가운 눈이 아니었습니다.
" 하필이면.....
...걱정되네..."
윈도우 밖을 내다보며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질척거리는 길을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 소리가 매장 안까지 들려왔습니다.
우산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행인들이 아주 곤란해하는 표정으로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내린 눈이 녹아서 길은 젖고 미끄러워 시민회관에 올 사람들이 적을 것 같아서
내심 날씨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해야지...'

오후 3시, 회사를 나와서 소망이를 태우고 시민회관으로 갔더니 단원들은 리허설을 하고
있었고 많은 대원들이 와 있었습니다.
우리가 늦었고, 연습을 3시부터 하기로 되었는데 4시부터 막 시작한 것 같았습니다.
무대 뒤 현수막을 그 시간까지 걸지 않았기 때문에 업자에게 독촉하는 핸드폰을 사용하는 모습을 지휘자에게 보이기도 해서 신경 쓰이게 한 것까지 오늘은 미안한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리허설 시간이 부족해서 지휘자 김강규 집사님이 서둘러 마치는 것 같아서 늦게 간 나는
날씨 때문에 소망이를 따로 오라고 하지 못하고 태워가다 늦은데 대해 ' 날씨 때문에 ...'
다시 한번 날씨를 원망했습니다.
눈과 비가 섞여 내렸기 때문에 연미복과 구두를 챙겨 가야하는 소망이를 같이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소망이는 피아노 적응 연습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글로리아 챔버 앙상블' 팀에 양보해야 했습니다.

시작 시간은 되어가고...
단원들과 대기하고 있을 때 나는 수시로 뚫린 구멍 사이로 객석을 내다보았습니다.
객석은 반도 차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무대에 서고 환한 라이트가 들어왔습니다.
'오늘 날씨는 우리편이 아니구나...'
1층도 빈자리가 더 많았습니다.

지휘자가 박수를 받으며 나와서 자리를 잡고 묵도를 하였습니다.
나도 잠시 묵도를 하였습니다.
" 하나님 찬양 , 영광 받으시옵소서...."

연주를 시작할 즈음에 우측 스텝 통로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계속 들렸습니다.
연주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지휘자가 그 쪽으로 몇 번 바라보다가 걸어가서 제지를 시키고서야 소리가 조용해졌습니다.
' 이런 경우 잘 안 되는데...'
내 경험으로 봐서 좋은 일이 아님이 분명했습니다.

연주자의 마음이 평상심을 잃어버리면 좋은 연주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지휘자의 얼굴에 특유의 미소가 사라지고 긴장한 모습을 보아서 그런지 아니면
시작 곡 자체의 무게와 어려움 때문에 그런지 우리의 첫 연주는 무척 어렵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범어교회의 작은 공간에서 연습할 때 소리에 비하면 시민회관을 울리는 우리의 찬양소리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첫째 곡을 연주하는 도중에 베이스 쪽에서 실수가 나왔습니다.
적은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연습할 때 나타나지 않았던, 한 두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의 실수였습니다.
아연 지휘자와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첫 곡으로 선택한 김청묵씨가 작곡한 시편95 편은 4/4 박자로 진행되다가 스물 네 번째 마디에서 3/4 박자로 한 마디 하고, 바로 이어서 2/4 박자로 한 마디 하고, 한 박자씩 쉬면서 시작되는 3/4 박을 거푸 두 마디하고, 2/4 박, 다시 4/4 박 , 다시 한 박 쉬는 2/4 박을
한 다음, 6/8 박 한마디를 한 다음에 비로소 4/4 박으로 돌아와 1절이 끝나는 까다로운
곡이었습니다.
' 어서 와, 어서 와, 여호와께 기쁜 노래 부르자...'로 시작하는 초청의 가사내용 때문에
지휘자가 선택을 한 곡이었습니다.

어느 단체든, 또는 개인이든 통상적으로 연습 때 보다 더 잘할 수 없는 것이 무대
연주입니다.
그렇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되긴 하지만 첫 번째 곡을 실수하고 난 다음부터의 연주는
출연자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으로 오는 법입니다.
'아이쿠... 첫 번째 곡에 실수를 ...'
합창단원으로서도 이러 할진대 지휘자는 오죽 할까 싶은 생각에 미쳐 대원들의 소리는 더 경색되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 무대를 잔뜩 긴장된 가운데서 내려오고 두 번째 무대에 소망이가 나갔습니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 잠시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한 소망이는 ' 라흐마니노프 Etude-Tableu Op.30 No.9 ' 를 연주했습니다.
한 곡이 끝나자 청중들로부터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소망이가 하는 동안 나는 가끔씩 무대뒤 쪽에서 뚫린 구멍으로 보기도 했지만 별로 긴장이 되지 않았습니다.

소망이는 이제 무대 경험도 많고 해서 웬만한 곳에서는 잘 해 주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소망이는 음악을 즐기는 듯 몸을 좌우로 앞뒤로 천천히 흔들며 연주에 몰두하고 있었
습니다.
두 번째 곡으로 찬송가 편곡 '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를 연주하고 큰 박수를 받고
내려 왔습니다.

세 번째 무대는 부부 무대로 커플 T를 입고 나가는 순서였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사랑아...' 가수 나훈아씨가 작곡을 한 곡인데
가사에 맞추어 제스추어도 하면서 다소 웃음을 유도하는 곡이었습니다.
커플 T를 입고 나선 데서부터 청중들도 우리도 긴장이 풀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부부 옆자리에는 조 목사님 부부가 섰는데 어찌나 진하게 사모님을 껴안으며 잘 하시는지 옆에 있는 우리 부부는 손해를 본 무대였습니다.

휴식을 하고 들어간 네 번째 무대는 정상적인 페이스를 찾아 여유를 갖고 잘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잘 했다고 여기는 것은 지휘자의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떠올랐었기 때문입니다.
지휘자의 표정은 합창소리의 거울입니다.
합창소리가 만족스러울 때 지휘자의 표정은 밝으며 비트도 자신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다분히 본인의 주관적인 내용임을 양해 바라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쓰고 다음에
이어서 올리겠습니다.)

2001, 12,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