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음악 그리고 좋은 사람들

2008. 11. 25. 22:57칼럼

 

오늘 저녁은 김도운 집사님이 지휘하는 레이디싱어즈 제3회 정기 연주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늦겠습니다. 어서 갑시다~ . 좀 일찍 가봅시다. >

뒷일을 직원들에게 맡겨놓고 성 권사님과 아내를 태우고 문화예술회관으로 갔습니다.

 

정체가 심한 성당동으로 가지 않고 봉덕시장 앞으로 해서 안지랑이 네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갔더니 시간이 10분이나 남았습니다.

 

연주회장에는 아직 우리 성가대원들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2 주전부터 이 연주회를 광고했고 올해는 성가대 세미나를 별도로 하지 말고 대신 직접 합창 연주회에 가서 보고 견문을 넓히자며 표를 사서 주고 예술회관 앞에서 모이자고 했었습니다.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대원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피아노 건반이 잘 보이는 쪽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시간이 되자 무대에 28명의 젊은 여성단원들이 무대에 들어와 섰습니다.

맨 앞줄에 체격이 엄청 뚱뚱한 아가씨가 특별히 눈에 띄었습니다.

< 왜 하필 맨 앞줄에 섰지? 뒷줄에 서면 좋을 텐데 우습네..ㅎㅎ >

 

아내가 웃음을 참으며 내 귀에 대고 가만히 속삭였습니다.

우리 교회 성가대원인 이, 조 두 자매는 맨 뒷줄이었습니다.

지휘자가 까만 연미복을 입고 박수를 받으며 무대 중앙으로 나왔습니다.

원래 머리털이 곧은 직모였는데 베토벤 타입으로 헤어스타일을 곱슬머리 파마를 한 지휘자가 머리를 깊이 숙여 청중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얼핏 본 지휘자의 얼굴이 약간 굳어있었습니다. 작년하고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어떤 소리가 나올까?

 

연주회에 참석하면 버릇처럼, 나는 첫소리에 관심을 가지는 편입니다.

처음 터져 나오는 한 프레이즈 소리를 들어 보면 그 합창단의 그 날 컨디션이나 실력을 대게는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합창단은 첫 곡으로 '아름다운 푸른 도나우'를 연주했습니다.

상당히 다듬어진 소리가 울려 나왔습니다.

단원 숫자는 30명이 안 되는 적은 수였지만 문화예술회관 대강당을 공명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간혹 어떤 부분에서 세련되지 못한 퍼진 소리가 나왔고 다이내믹이 너무 단조로워

여성 합창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듣는 이로 하여금 긴장을 못 느끼게 만드는 것이 흠이었습니다.

 

아주 여리게 표현해야 할 부분에서 제1 소프라노 보다 알토의 볼륨이 필요 이상으로 컸고

알토의 음색이 다른 두 파트와 매우 달라서 브랜딩이 잘되지 않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객석에서 바라보면 누가 열심히 노래하고 있는지 다 분간이 되는데, 몇몇 단원들은

악보를 들여다보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자신이 없어서인지 입을 크게 열지를 않았습니다.

< 연습이 덜 된 모양이지.>

 

한 곡이 끝나자 객석 중앙쯤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따라 박수를 쳤고 지휘자가 돌아서서 인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음악회장의 분위기가 고조되다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지휘자는 곡을 선정할 때 청중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하여 곡 순서를 강하고

빠르게 할 곡과 여리고 레가토로 할 곡을 앞뒤를 계산해서 세밀하게 조정하는데 박수를 쳐서

그 분위기를 깨버리고 있으니 연주자를 격려해 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방해한 셈입니다.

 

지휘자는 1부의 세 곡을 마친 뒤에도 무대에서 내려가지 않고 2부 순서라 표시해 놓은 부분의 네 곡까지 계속했습니다.

보리수, (비발디 사계 중에서), 가고파, 보리밭, 새타령, 상록수, 등을 부르고 첫 무대를 마쳤습니다.

 

두 번째 스테이지로 오늘 특별 출연하는 '은빛 메아리' 합창단원들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은빛 메아리 합창단은 60세 이상의 노신사들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지휘는 라*관님이 맡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특별한 합창단이 대구에 있다는 사실이 대구가 음악의 도시임을 나타내 주는 것 같아, 은근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젊은 여성들의 다소 날이 선 듯한 소리를 듣다가 남성의 푸근한 저음을 들으니 역시 남자들 소리가 좋구나 싶었습니다.

 

세 곡을 하는데 세 번째 곡이 강문숙 님의 시에 임우상 님이 곡을 붙인 '등불'이었습니다.

'나 이제 등불 하나 밝혀야겠네' 로 시작되는 노래였습니다.

 

연습이 덜 되었던지 한 두 군데서 동시에 같이 시작이 안되고 먼저 튀어나오는 소리가 있긴 했어도 합창곡 자체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레이디싱어즈가 푸른 드레스로 바꿔 입고 다시 무대에 나와서 3부 순서로 "깐소네 모음"을 들려주었습니다. 메들리는 아무리 잘해도 점수를 많이 따기가 어렵습니다.

잠시 퇴장했다가 다시 등단한 4부에서는 성가합창곡 네 곡을 연주했습니다.

스테이지 중간에 다른 순서를 넣지 않아서 자기네들이 나갔다가 다시 들어서는 것이 흠이었습니다.

 

청중 대부분이 각 교회에서 온 교인들일 텐데 이왕이면 성가를 좀 더 넣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지휘자는 앙코르곡을 단 한 곡만 하고는 대원들을 퇴장시켰습니다.

 

아무래도 오늘 기분이 안 좋거나 연주가 힘이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가을에 하는 것보다 봄에 한다는 것은 준비 기간이 짧아서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강행을 한 탓에 지휘자로서 이번 연주가 큰 부담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포르테를 표현할 때 간혹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드는 버릇은 김도운 지휘자의 트레이드마크 입니다.

 

연주가 끝나고 로비에 나온 우리는 아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크리스천 코랄에서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과 지휘 공부를 함께 했던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우리 교회 성가대 총무 배*호군이 먼저 우리를 봤던지 가까이 다가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 집사님, 우리 대원들 저쪽에 있습니더.... 저리로 가입시더...>

그 곳에는 반주자 김혜경 집사와 장영수 집사, 그리고 안은영 자매, 김영락 군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열명 정도는 올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적게 온 셈입니다.

 

인사를 마치고 주위를 살펴보았더니 강문숙 님이 보였습니다.

베이지 색 투피스를 입고 밝게 웃으며 작곡가 임우상 씨와 또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누가 주었는지 꽃다발을 안고 있었습니다.

아내를 알아보고는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우었습니다.

< 축하합니다. 오늘, 노래가 매우 좋았습니다.>

축하 인사를 했습니다.

< . 독창으로 듣던 것보다 합창으로 들어보니 훨씬 좋은 것 같아요...>

< ~ 참 좋았습니다.>

 

한참 지나서 김도운 지휘자가 나왔습니다.

< 수고 했습니다. 훌륭했습니다.>

< , 고맙습니다. >

< 사람들도 많이 왔고>

 

음악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 김도운.

그에게 격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넉 달 전 메시야 전곡 연주를 한 데 이어 이번 연주는 짧은 시간에 매우 힘들었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개인 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이, 조 두 자매에게 성가대에서 준비해 간 꽃이 전달되었습니다.

얼떨떨해하며 고마워하는 표정이 순수했습니다.

<집사님, 안녕히 가십시오.>

 

성가대원들의 인사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온 우리는 주차장 쪽으로 걸었습니다.

! 이것이 사람 사는 맛이지.

 

, 음악, 그리고 좋은 사람들.

문화예술회관 뜰에 일렁이는 봄바람이 상쾌한 밤이었습니다.

 

 

2002,04,15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