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며 살기에도 짦은 세상인데...

2008. 11. 25. 23:42칼럼

칼럼을 통하여 크리스챤들이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상호 격려하며 신앙의 증진을 도모하는 것은 지극히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보이지 않는 얼굴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어느누구보다도 가까웁게 여겨지는 사람들입니다.

각각 섬기는 교회가 있고 분야별 사회
활동 공간도 다르지만 우리는 이 칼럼을 통하여 공통 관심사를 논하며 충분히
서로를 파악하고 교제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이가 은혜 받았던 내용을 글로 올리면 다른이가 읽고 함께 은혜에 잠기지만, 부정적인 내용을 올리면 신앙이 여린 이는 상처를 입고 읽었던 글로 인해
기분이 언짢아지고 불쾌해 집니다.

때에 맞는 말은 은쟁반의 옥구슬이라고 했습니다.
좋은 말, 덕담, 칭찬, 격려 , 감사, 은혜의 글을 읽는 것도 시간이 바쁜 사람들이 모이는 칼럼입니다.

좌중을 부드러운 웃음으로 유도하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분위기를 은혜롭게 이끄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기독교의 비리, 부조리를 모르겠습니까?
지상의 교회는 완벽한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 냄새가 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허무는 자를 미워하십니다.
주의 종들의 허물이 드러나더라도 그 허물을 지적하며 대항하는 막대기로 사용되는 사람이 되면 그 자신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허물있는 주의 종의 편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하는 데 쓰여지는 도구가 될지언정 방해하는 도구로 쓰여지지 않아야 됩니다.

남의 허물을 사랑으로 지적하려거든 조용히 개인적 메일을 보내어 형제애로 지적해 주는 것이 바른 자세이며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를 막는 결과가 나타나므로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 됩니다.

출애급 당시 아말렉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아가는 길을 막았다가 지상에서 멸종되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노아가 술을 먹고 취하여 벌거벗었을 때
함은 그 아비의 하체(치부)를 덮어주지 않고 밖에 나가서 형제들에게 사실대로 (지극히 사실대로...) 고하였지요.

그러나, 샘은 뒷걸음질로 다가가 그 아비의 하체를 덮어 주었습니다.
그 보상으로 샘은 모든 형제위에 뛰어나는 복을 받았습니다.

함에게 내린 벌(저주)이 그 자식 가나안에게 내린 것을 봐서 자식이 잘못되게 하므로서 함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컸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심판하실 분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에 모든 잘잘못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피조물 된 사람의 지혜입니다.

'남을 비판하지 마라' 라고 하신 하나님이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고 잘못을 지적할만큼 우리가 정확한 눈을 가지지 못했고 ,
또, 그 심판자의 지위를 어느 누구로부터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는 한 식구요 형제 자매입니다.
누가 고난을 당하면 위로해주고 기도해 주며 따뜻한 말로 격려를 해야겠지요.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기도로 후원해 주는 것이 성도의 도리입니다.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며 사랑합시다.

위로하며 살아도 너무 짧은 세상 아닙니까?

2002·08·16 쓰다.

 

노르웨이 빙하가 녹아서 내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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