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뜨겁게 사랑하던 H 집사님

2008. 11. 29. 11:42칼럼


2013년 3월 예배후 다과 시간



내가 H집사님을 처음 안 것은 성동교회에 오고 난 뒤부터입니다.
그 때가 12년 전이니까 지금보다는 젊었을 때였고 머리를 뒤로 곱게 빗어 망사로 봉긋하게 꼭 붙들어맨 뒷머리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던 집사님이었습니다.
한 교회에 같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겪어보니 얼굴도 고운 분인데 마음씨는 어찌나 더 고운지 한 마디로 천사표 집사님이었습니다.

잘 살지는 못해도 건강한 남편 집사님과 딸 둘이 있는데 큰 딸은 초등학교 교사로,
둘째 딸은 경찰학교 시험을 준비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작은 아파트도 사서 재미나게 살고 있습니다.
교회부근을 떠나기 싫다며 기도하며 찾던 중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집이라고 무척이나 좋아하던 집사님.
조그마한 수퍼를 하다가 주일이면 문을 닫고 교회에서 고등부 교사로 성가대원으로 열심히
봉사하던 집사님을 우리 회사에 불렀더니 몸을 아끼지 않고 무슨 일이나 내일처럼 아주
열심히 일을 하시던 집사님이었습니다.

집사님이 맡은 일 중에는 내근 직원들의 점심을 준비하는 일도 있습니다.
H 집사님이 밥을 해서 사무실에서 점심을 같이 먹을 때는 교회 이야기며 가정 이야기며
관심거리들을 꺼내 놓고 담소하며 가족 같은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헌신적인 H 집사님은 고등어나 생선이 있을 땐 손으로 아예 뼈를 다 발라내어 살코기만을
애기에게 주듯 내 밥숟가락 위에다 얹어주기도 했습니다.
집사님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아내도 그의 여성스러움과 자상함에 놀라워했습니다.
목소리가 가늘면서 말도 조용하고 나직나직하게 하는 H 집사님이지만 월요일 아침
직장예배를 드리는 시간에는 제일 많이 아~멘, 아멘~ 하는 사람입니다.
조 목사님의 한 마디가 떨어지기 무섭게 부지런히 아멘으로 받으며 은혜를 받는 바람에
우리 예배 분위기는 저절로 고조되곤 했습니다.

예수의 사랑에 뜨거운 사람, H 집사님이 어느 날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어제 저녁에는 어떤 집사님 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전무님 성가대 지휘하시는 거 보고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내년에는 자기도 꼭 성가대하겠다 카면서 같이 찬양하자고 해가주고
전화통을 붙잡고 1시간이나 찬양을 했다카이..." 라고 했습니다.
" 누가 ? 누군데?..." 하고 궁금해서 내가 다그쳐 물었더니
" 절대 말하지 마라 캅디더... 전무님 지휘하시는 모습이 그렇게 은혜가 된다카면서 쫒아가서 손을 한번 만져봤으면 싶다카잖아..."
함께 듣고 있던 아내가 "손 한번 만져보라카지와..." 웃으며 거들었습니다.
" 찬양이 하고 싶다카면서 같이 찬양하자꼬 케서... 어제는 다른 일도 못했다..."

아마 뜨거운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은혜가 되는 모양입니다.
전화기를 붙들고 한 시간을 찬송할 수 있는 이 H 집사님이 이제는 우리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교회 여 전도사님으로 초빙을 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지난 월요일 아침엔 조 목사님께 그 동안 은혜 받았다며 상품권을 전하면서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주를 사랑하는 열심이 주변 사람들까지 뜨겁도록 했던 집사님때문에 도전도 받았었는데 ....

교회를 섬기고 싶어서 성경학교를 다녔던 집사님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오후 네시면 간식이라며 과일이나 떡을 정성스레 챙겨주던 집사님이 가고 나면 꽤나 허전할 것 같습니다.

좋은 사람 한사람이 곁을 떠나는 가을입니다.
그러나, 집사님의 따뜻한 손길이 우리보다 더 필요한 곳에서 아름답게 쓰여질 것을 믿기에 그의 새로운 첫 걸음을 축복합니다.

2002 10 06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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