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 판이 들어 오던 날

2008. 11. 29. 23:38칼럼

비가 오는 가을 오후
“전무님, LP 판 필요합니까? 가져 가까예?”
A/S 나갔던 한 직원이 전화로 내게 물어 왔을 때 나는 무슨 소린지 알아채고 바로

“ ... 갖고 오게.”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녁에 출장 나갔던 직원은 LP 판을 큰 박스로 하나 가득, CD 판을 종이 쇼핑백에 한 가득 담아서 차에 싣고 왔습니다.

저녁에 집에 갖고 와서 정리해 넣으면서 보니까 LP 판이 201장이고 CD 가 40장 이었습니다.
돈으로 값을 치면 150 만원정도는 족히 될 것 같았습니다.

아마 음악을 좋아하든 남편이 죽자 음악에 취미가 없는 안 주인이 가지고 있다가 이사를 하면서 버릴려다가 마침 A/S 봐주러 갔던 우리 직원에게 준 것이려니 짐작해 봅니다.

판은 아주 보존이 잘 된 상태였습니다.

주인이 좋은 판이 나올 때마다 사 모았는지 LP 판은 클래식이 많았고 팝송도, 영화 음악도 있었습니다.

황야의 은화 1 불은 눈이 번쩍 뜨이게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진흙 구덩이에서 보화를 찾은 듯 기분이 좋아서 “야! 이것 봐라. 히야.... ” 탄성을
질렀습니다.
어릴 때 들어봐서 그 것이 얼마나 반가웠던지요.

희귀 음반을 얻을 때의 그 기쁨이란...

요즘은 턴테이블로 LP 판을 듣는 사람이 잘 없습니다.
CD 가 나오면서 LP판은 외면을 당하고 있고 특별한 애호가가 아니면 턴테이블은 있어도 잘 사용하지 않는 편입니다.
CD 1 장을 틀어 놓으면 74 분을 들을 수 있지만, LP 판은 20분가량 듣곤 판을 바꿔 줘야하는 불편 때문에

다들 귀찮아하는 편입니다.
또, LP 판은 CD 에 비해서 간수하기도 불편하고 잡음도 많고 자리도 많이 차지하고 해서 집안에서 천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LP 판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꽤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인데 아내는 짐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장래 나이가 많아지고 손에 일을 놓을 때면 시청실을 잘 만들어서 LP 판을 턴테이블에
걸어 놓고 음악을 제대로 즐길 생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LP 판이 돌아가며 암대가 파도를 타듯 출렁이며 미끄러지는 가운데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그 자체를 너무

좋아합니다.
CD가 내는 소리와 LP 판이 내는 소리가 큰 차이가 나서가 아니라 (어떤이들은 LP판이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고 합니다만) 그 판을 교체할 때의 맛이 정겹기 때문입니다.


돈 주고 사지 않고도 귀한 판이 생겼으니 그렇지 만약 돈을 주고 사야 한다면 아내의 반대로 이 만한 판 구하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마음에 드는 토렌스 턴 테이블로 바꾸면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큰 집에 사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차를 타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아담한 시청공간을 만들어 놓고 차 한잔 마시며 좋은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꿈입니다.

마음속으로 꿈꾸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 같아서 기분이 매우 좋은 밤입니다.

2003, 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