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 제갈* 화이팅!

2021. 3. 13. 23:55구, 홈페이지 자료

( 이 글은 세째 여동생이 쓴 글입니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공부를 하려고 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에 입학을 했다, 마흔 나이를 잊고 지내는 내게 방통대공부는 하루에도 열 번쯤 나이를 깨닫게 해주고 있다, 강의를 들을 땐 분명히 이해를 했는데 하루만 지나면 아리송한게 이해가 안가고 외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

아. 나이는 머리로 먹는구나 생각하면서 머리가 안되면 오기로 하겠다고 결심을 하는데 내 결심을 깍아 내리는 게 막내였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저녁에 잠이 들 때까지 내게서 떨어지지 않는 막내. 텔레비젼 앞에 앉아서 강의를 들을라치면 만화 나오는데 틀어달라고 떼를 쓰고 만화를 틀어주고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어느새 와서 어깨에 매달리니 공부가 될 리가 없었다, 거기다 왼 종일 저지래가 어찌나 심한지 따라다니며 치워줘야 할 지경이라 공부할 시간이라곤 새발에 피만큼 밖에 가질 수 없었다.

생각 끝에 아직 다섯 살 밖에 안된 녀석을 학원에 보내기로 마음을 먹고 물어보았다,
"너 학원 갈래? 거기 가면 친구도 많고 선생님이 많이많이 놀아줄텐데?"
녀석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마음이 변할 새라 당장에 손을 잡고 학원을 찾아갔다.

이왕이면 아는 애가 있는 곳이 나을 것 같아서 제 친구 보배가 다니고 있는 미술 학원으로 갔다. 제법 큰 건물에 실내 놀이터도 있고 이쁘게 인테리어가 되어 있어서 내 마음에 쏙 드는데 저도 눈에 익은 보배 얼굴도 보이는 데다 저만한 아이들이 열 댓 명 모여 있으니 입이 방글방글 해서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 나 여기 매일 매일 올래."
"그래 그래, 오늘부터 다녀라. 아유, 엄마 닮아서 시원시원한 거 좀 봐."
더 볼 것도 없이 입학 원서를 작성하고 원장님께 잘 부탁한다고 말씀드리고 보배 옆자리에 앉혀주고 말했다.
"엄마는 집에 가있을 테니깐 보배랑 신나게 놀다 와."

고개를 끄덕이는 막내를 두고 혼자 학원을 나오는데 아! 어깨에서 날개가 쑥 나오는 것이었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지만 분명히 날개가 나왔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훨훨 걸어서 올 수 있으랴.

그 날은 시간에도 날개가 달린 것 같았다. 막내를 학원에 대려다 주고 온 시간이 오전 11시쯤이었는데 오자마자 커피 한잔 먹고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으로 방송대에 들어가 게시물을 읽다가 한 시간 쯤 지났나 해서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 두시가 넘어서 있는 것이었다. 너무나 빨리 가버린 시간이 아쉽기만 했지만 어디 오늘만 날이겠느냐 했더니 잠시후 원장님 차를 타고 나타난 막내가 말했다.
"나 이제 절대로 절대로 안 갈래."
"왜?"
"내가 보배랑 장난친다고 선생님이 막 꼬라봤어(노려봤어)."
"꼬라보면 어때 괞찮아."
"싫어, 절데로! 안 갈거야,"
"이구, 아빠 닮아서 성질도 더럽지. 그래 가지마 그럼."
그러나 한나절간 맛 본 그 평화롭고 조용한 나만의 시간을 포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나는 일주일 후에 또 막내를 꼬셨다. 그땐 보배도 학원을 그만두고 유치원에 다니고 있어서 그 유치원엘 보낼 생각을 했다.
"있지. 보배도 학원 그만두고 유치원에 갔는데 선생님이 천사처럼 착하고 이쁘고 그렇대. 우리 한번 가볼까?"
"응."

바로 들쳐업고 유치원으로 갔다, 학원보다 더 큰 건물에 실외 놀이터도 있고 연세 드신 원장님이 할머니처럼 인자한 웃음으로 맞아주시는데 느낌이 좋았다. 막내를 맡을 선생님도 무척 부드럽고 상냥한 얼굴이었다.

원장님께 우리 아이는 누가 꼬라보거나 야단치면 절대로 안 오니깐 당분간만 각별히 신경을 써 주십사고 부탁을 드리고 있는 사이 놀이터에서 선생님 손을 잡고 미끄럼을 몇 번타고 온 막내가 말했다.
"엄마. 나 여기 매일 매일 올래."
"그래 꼭꼭 약속!"

이미 다른 아이들이 거의 다 집으로 돌아 간 시간이라 원서만 쓰고 막내랑 같이 집으로 오면서 이쁜 옷도 사주고 인형도 사 안기고 손가락을 걸었다.
"유치원 잘 다니라고 사주는거야. 안 가면 다 뺏어서 보배 준다? 이번엔 잘 가야해 응? 약속!"

다음날 아침 여덟시 40분에 보배네 집 앞에서 보배와 같이 막내를 노란 차에 태워 보내고 집으로 왔는데 돌아온다는 오후 두시 30분까지 긴장의 연속이었다, 또 안 간다고 하면 어떡하지.., 내일 또 간다고 할까? ...하는 걱정으로 시간을 다 때우고 있는데 드디어 두시 30분에 노란 차를 타고 막내가 나타났다, 피곤했던지 차에서 자고 있었다.
안아든 순간 눈을 반짝 뜬 막내에게 "재미있었어?" 하고 물었다,
"어."
야호! 눈물나게 반가운 말이었다. 집에 와서도 몇번이나 물어보았다.
"너 내일도 갈 거지?"

그런데 막내의 대답이 영 시원찮았다, 가긴 간다는데 뭔가 게운찮은 표정이어서 자꾸 물어보니 아뿔사, 화장실에서 뒤처리를 할 수 없어서 고민을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께 부탁을 하자니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하기야 아빠한테도 부탁을 안 하는 애니 그럴 만 했다.

내 생각 만 하느라고 그런 중 차대한 문제를 생각지 못한 나 자신이 엄마로서 너무 한심했다. 학원에서도 그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안 가겠다고 한 건지도 몰랐다,
막내 손을 잡고 화장실로 가서 휴지 사용법을 가려춰 줬다, 휴지를 아끼지 말고 듬뿍쓰는 방법으로...그리고 두 번의 실습을 시킨 결과 막내는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검사를 한 결과 썩 양호했다. 며칠 째 막내는 유치원엘 잘 다니고 있다. 내게 주어진 자유와 긴 시간을 만끽하면서 이쁜 막내에게 눈물나게 고마움을 느끼는 요즘 시간당 평균 다섯 번씩 "막내는 지금 뭘 할까.."하는 생각을 한다. 고마운 우리 막내,,,,,,,

 

 2001·04·25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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