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에 있었던 일

(2001·04·18 작성한 글입니다.)

 

20년이나 참아왔던 치질수술을 이번 고난주간에 하게 되었다.
예수님의 고난을 조금이라도 동참해 보기 위해 치질수술을 잘한다는 감삼동에 있는
'구' 병원엘 갔다.
월요일 오후에 간단한 검사를 하고 수술과 입원실 예약을 한 다음 화요일 오전에 입원했다.
어머니께서는 걱정이 돼서 만류 하시다가 나를 따라 나서셨다.
작은 수술이라 하더라도 수술이라니까 염려가 되신 모양이다.

입원실로 올라가 환자 옷으로 갈아입은 후 침대에 누워 링거를 팔에 꽂고 대기하다가
시간이 되어 침대에 실려서 수술실로 내려갔다.

수술실 입구까지 침대를 따라왔던 아내는 수술실 문 밖에서 나를 향해
" 여보 잘해!..." 하며 긴장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 내가 수술하나? 의사가 하지..." 속으로 말하며 "걱정하지마..."하고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묵상 기도를 했다.
'하나님 수술이 잘되도록 도와주십시오....의사들 실수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조금 있다가 내 차례가 되어 TV속에서 가끔 봐서 눈에 익은 수술 조명기구가 천장에 달린
곳으로 내 침대가 옮겨졌다.
이어서 마취를 하는 사람에 의해서 마취 주사를 두 군데 맞았다.

수술 침대에 엎드린 체 고개를 옆으로 하고 가만히 하반신 마취가 되기를 5분 정도
기다렸다.
" 환자분 수술하는 동안 음악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잠시 음악 듣고 계십시오.."
한 간호사가 내 귀에 리시버를 얹어 주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귀에 많이 익은 대구남성합창단의 연주녹음이었다.

할 일이 또 하나 있다?
수술받을 사람들을 위해 제대로 좋은 곡을 들려준다고 생각했다.
그것참, 좋은 가사를 선택했네 이 사람들.....

저절로 이 들의 서비스 정신에 감동이 되었으며 합창곡을 들려주어서 더욱더 좋았다.
하체로는 감각이 없어지고 있었으나 내 상념은 편안한 여행을 하고 있었다.

조금 후 내 수술을 담당할 원장이 내 곁에 오는 것 같더니 "사장님!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시지요?"
하면서 내 귀 가까이에 대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손바닥으로 내 허리와 엉덩이 부분을 어루만져 주면서 "아프지 않을 겁니다."
하며 긴장을 풀어 주려는 말을 했다.

"네.... 음악이 참 좋습니다....."
나는 고마움을 그렇게 표시했다.
그는 얼마 전 우리에게서 오디오를 사 간 인연으로 알게 된 사람이다.
음악을 들으며 아픈 줄 모르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는데 일곱 곡 정도를 들었을
때쯤 수술이 끝나고
" 사장님! 수술 잘 되었습니다. 재발하지 않도록 잘했습니다."
원장이 내게 수술 끝남을 알려 주었다.

아내가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다가 내 침대가 나가자" 믿음이 아빠, 괜찮아?"
내 눈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응 괜찮아"
병실로 돌아온 나를 어머니께서 맞았으며 내 엉덩이 밑에는 패드(기저귀)가 채워지고 ,
간호사가 내게 반듯하게 누워 있어야 된다는 당부의 말과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들려주었다.

" 당신 푹 쉬게 생겼네... 오랜만에..."
아내가 웃음을 보이며 여유가 생겼는지 우스갯말을 했다.
진통제를 링거에 함께 맞기 때문인지 고통은 생각보다 심하진 않았다.

학교에 갔다 온 믿음이가 들여다보러 왔다.
믿음이가 의사가 되었을 때 수술하면 조금 더 싸게 할 수 있을 텐데....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2인 실인데 옆에 환자가 없어서 침대에 걸터앉았다가 누웠다가 하며 한참 있고 난 뒤에 아내와 믿음이가 돌아가고 어머니만 내 곁에 남아 계시게 되었다.

나는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51년을 살아오면서 큰 병치레 한번 않고 지내온 터라, 남의 아픔에 대해서는 실감을
하지 못해 깊은 위로의 맘을 가져 보지 못한 나 자신인 것을 알고 있다.

아프면 어느 정도 아픈 것인지?
아파 봐야 남의 사정도 알 텐데,...

2박 3일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목요일 오후에 아내가 와서 퇴원수속을 하였고, 퇴원을 한 나는 차를 운전하여 밀레 사무실로 갔다가 이 틀 동안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퇴근 시간까지 근무하다가 8시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일이 심상치 않았다.
링거 효과가 끊어져서 그런지 용변을 볼 때 매우 아파서 쩔쩔매야 했다.
수술 부위가 쓰라리고 아파서 변기에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소변도 제대로 잘 나오지 않아서 큰 고통을 주었다.


'장난이 아니네.....'
병원에서 준 진통제가 있었지만 나는 약국에서 진통제를 예비로 더 사서 두 알씩 더 먹었다.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고 그저 눈을 감고 침대에 눕고 싶기만 했다.

고난에 동참한다?
그런 숭고한(?) 뜻은 여지없이 허물어져 내리고,
나는 화장실에 앉아서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리며 아프다고 속 비명을 질렀다.

고난의 주님을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나는 진통제를 더 신뢰하는 자가 돼 버렸다.
에구! 아픈데 어째.

금요일, 아침 한 끼 금식해야 하는데 약을 먹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금식도 하지 못했다.
화장실을 연방 드나들면서 찔끔대는 용변을 보았고
좌욕이며 패드 교환이며 하는 동안
나는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 하나님의 선물인가 하는 것을 새로 깨달았다.
건강할 때 하나님 일을 조금이라도 해야지.... 우이 아파라!

점점 무너지는 건강,
내 인생 시계- 오후 세 시일까? 아니야 네 시 정도 되었겠지.....

화장실 안에서 세숫대야에 뜨거운 물을 받아 놓고 엉덩이를 담근 채 앉아서 세 시 네 시를 따져 보았다.

먹은 것을 속 시원히 배설할 수 있다는 것, 오 그것은 얼마나 큰 복인가?

수술 부위에서 진물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패드를 차야 하는 불편함도 컸다.
매달 한 번 있는 생리처리를 위해 여자들은 이런 고생을 몇십 년을 해야 한다니....
여자로 태어나지 않고 남자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보았다.

여직원들의 생리 휴가를 줄 필요가 있느냐? 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였던 나는
이번 일로 인해 생리 휴가는 반드시 주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하게 되었다.

주일날 오후 두류 운동장에 부활절 연합예배가 열리고 있었지만 나는 갈 수가 없었다.
매년 부활절 연합예배에 빠짐없이 참여했었지만 만사가 귀찮아지고 몸이 화장실로 자주
가야 할 입장이 되고 보니 올해는 빠지는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도 아내도 못 가고 말았다.

석가탄신 어쩌고 하면서 연등을 도로 여기저기에 걸어 놓은 이 봄에, 기독교 최대 축일
(祝日) 중 하나인 부활주일 연합예배를 빠진 것은 서운한 일이다.

고난주간에 수술한 것이 덕이 아니라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난주간에는 삼가 모든 일을 부활주일을 맞을 준비를 하며 경건하게 보내야 하는 것인데...

이틀만 입원하면 퇴원한다는 말만 듣고 가볍게 생각한 나의 고난주간 수술결정은
하나의 착오로 기억될 것이다.

 

 

2001·04·18 2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