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일장로 회고록(21)
-
본향을 향하여[15]
본향을 향하여[15] 혁명정부가 수립된지도 삼개월이 지났다. 이제는 모든 행정이 착착 순조롭게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팔월이십일경 무더운 삼복중이었다. 각 시군의 과장에 대한 인사이동이 단행되었다. 나는 포천군 산업과장으로 영전 보직발령되었다. 새삼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친구를 돕겠다고 양평 군에 발을 들여놓은 지 팔년의 세월이 흐른 후였다. 양평을 떠난 다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특히 교회가 내 발을 붙들었다. 교회를 위하여 종신토록 봉사하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하고 장로의 직분까지 받은 나였다. 정든 교회를 떠나려니 주님의 사랑과 명령을 저버리고 주님을 배신하는 듯하여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장래의 소망과 희망이 넘치는 영전이 아닌가하는 육의 위로도 있었다. 포천군에서 김철수산림계 차석이..
2008.12.24 -
본향을 향하여[14]
본향을 향하여[14] 상호비방의 중상모략이 난무하는 가운데 드디어 3.15 정.부통령선거의 날이 되었다. 양평군에서도 큰 충돌이나 불상사 없이 선거가 진행되었고 저녁 일곱시부터 군 청사에서 개표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승만 대통령후보의 득표상황은 구십육.칠퍼센트를 오르내렸고 부통령후보도 팔십사오퍼센트를 오르내렸다. 백퍼센트 가까운, 유사이래 없는 좋은 득표였다. 개표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새벽 다섯 시 전에 모두 완료되었다. 득표율이 높아서 그런지 경찰에서는 송목사님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십 여일이 지나도록 목사님이 무사하자 나는 안심을 하였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국민의 여론이 분노로 치닫고 있었다. 그것이 무슨 선거야, 사전투표를 하였다, 투표함을 바꿔치기 했다, 무더기 대리투표를 했다..
2008.12.24 -
본향을 향하여[13]
본향을 향하여[13] "회계장이 누구요?" 책상 위에 놓여진 상이자가 볼멘소리로 나를 찾았다. 내무과장을 비롯한 다른 직원들은 슬그머니 뒷문으로 다 빠져나갔다. 도세계직원이 나를 가르쳐 주는 순간 그는 비호같이 몸을 날려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책상 위에 앉았다. 그 날렵한 동작을 보니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였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정신이 아찔하였다. 그러나 담당책임자이니 회피할 수도 없어 자세를 바로 하고 정신을 차려서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몸이 비호같이 날세죠? 참으로 놀랐네요." "상이자로서 몸이나 동작이나 빨라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죠." "어디서 왔습니까?" "어디서 오긴 어디서 와요. 서울에서 왔소. 어서 여비나 좀 주쇼." "마침, 원호담당자가 없어요. 어떻게 하..
2008.12.24 -
본향을 향하여 [12]
본향을 향하여 [12] 행정업무라야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대원들의 신상명세파악, 봉급수령전달, 보급물자 수령공급 문서전달 확인 등이었다. 오전만 성실히 집무하면 끝나는 단순한 업무였다. 처음 며칠은 합숙소에서 생활을 하였으나 여러모로 불편한 것이 많아 민간인 방을 얻어 기거하기로 박 경사와 입을 맞추었다. 방을 얻기 위해 마을을 돌아다녀보니 폭격으로 인하여 안동중심지 시가지가 완전히 초토화되었고 깊이 패인 구덩이가 늘려있었다. 폭격에서 벗어난 주택도 군 사단 요원들의 숙소로 사용하고 있어 방 한 칸 구하는 것이 그리 어려웠다. 전 시내를 이틀씩 찾아 다녔지만 빈방을 구하지 못 하였다. 삼일 째 되는 날 무심코 옥야 동파출소 뒷길 판자촌을 걸어가다가 울타리를 높이 올린 판자 문이 조금 열렸기에 들어가니 안..
2008.12.24 -
본향을 향하여[11]
본향을 향하여[11] 일천구백오십년 십이월 이십일일. 나는 수도경찰학교에 입교하였다. 이곳에서 일개월간의 고된 교육훈련을 받고 종로 경찰서로 발령 받았다. 일천구백오십년 십이월 삼십일일 그믐날 저녁 출동명령이 내려졌다. 나는 다른 경찰관들과 함께 경찰서 뒷마당에 무장을 하고 대기하였다. 무장이라야 구식장총에다 배낭을 등에 진 것뿐이었다. 기동대장격인 경감이 나와서 훈시도 없이 대기하고있는 군용트럭에 전원 승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인솔자의 이름도 행선지도 어떤 지시도 없이 대원들은 밤 열 시경 종로경찰서를 출발하여 창경원 혜화동 돈암동 미아리를 경유 창동까지 와서 역전광장에서 하차하였다. 이곳에서 인원을 다시 점검하였다. 우리는 인원점검이 끝나자 바로 창동거리를 지나 어둠이 가득한 논둑 길과 냇가를 걸어..
2008.12.24 -
본향을 향하여[10]
본향을 향하여[10] 칠월 이십삼일 오후 다섯 시경 덕소에 있는 내무소원이 싸이카 오토바이를 타고 와 저녁 아홉시까지 덕소 내무분소로 나오라고 엄명을 내렸다. 강선봉이도 나온다고 했다. 왜 하필 밤에 나오라고 하는 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할머니도 매우 불안해하시는 눈치셨다. "몸조심해서 갔다 오너라. 기도하는 맘으로 갔다오너라." 할머니 말씀이 아니더라도 매사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움직이고 있던 터였다. 마을 앞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윗말에서 강선봉이가 내려오는 게 보였다. 강선봉이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불안한 표정이었다. 나도 불안하기는 매 한가지였다. 삼십리길을 걸어가는 발걸음이 더 할 수 없이 무거웠다. 밤 열시가 지나서야 내무분소에 도착하였다. 내무서원이 내 신원을 확인하더니 이유불문하고 ..
2008.12.24